취업을 했지만 월세를 내고 나면 저축할 여력이 없어 독립을 미루는 청년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 좀더 넓은 집에 가고 싶지만 전셋값 걱정에 이사를 망설이는 부부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 가까운 곳에 사는 게 낫지만 살던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은 어르신도 계신다.
이처럼 사정은 저마다 다르고, 그런 고민 한가운데에는 집이 있다. 어디에서, 얼마의 부담으로,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느냐에 따라 결혼과 출산, 일자리와 노후까지 삶의 선택도 달라질 수 있다.
주거정책을 맡아 여러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집을 둘러싼 고민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의 형편도 살펴야 하고, 가족의 변화와 앞으로 살아갈 시간도 함께 헤아려야 한다. 그만큼 주거정책은 국민의 삶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정부가 앞으로 5년간의 주거복지 방향을 담은 ‘주거안정플랜’을 세운 것도 이런 고민에서다. 충분한 주택 공급으로 시장의 안정을 뒷받침하면서, 각자의 형편과 삶의 변화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주거의 폭을 넓히고자 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공적주택 119만호를 공급한다. 장기공공임대주택은 OECD 선진국 평균을 뛰어넘는 250만호까지 늘리고,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실수요자에게는 공공분양 24만 3000호를 공급한다. 당장 집을 사기보다 오래 안정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20년 이상 장기 민간임대유형을 신설하고 HUG의 20년 장기 모기지 상품도 올해 11월 중에 내놓는다. 사회경제연대 주체의 공적주택 공급도 대폭 확대해 공급 주체를 다변화한다.
집의 수만 늘린다고 주거 고민이 모두 풀리진 않는다. 집이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넓고 쾌적한지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계층이 선택할 수 있는 보편형 공공임대주택을 선호 입지에 공급하고 중형 평형을 늘릴 계획이다. 오래된 임대주택은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통해 주거환경을 개선한다.
사람마다 필요한 집이 다르다는 점도 살폈다. 청년에게는 공적주택과 월세 지원을 늘리고, 신혼·양육 가구에는 육아특화주택을 지원하며 결혼페널티를 해소해 주택 구입 여력을 확대한다. 특히 다자녀 가구에는 청약 기회를 확대해 주택 구입을 폭넓게 지원할 계획이다. 어르신에게는 주거와 돌봄이 결합된 고령자복지주택과 은퇴자마을을 확충한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도 보다 일찍 찾아 지원할 계획이다.
주택정책에서 몇만 가구를 공급하고 지원 대상을 얼마나 늘렸는지에 눈이 가기 쉽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기준은 다르다. 필요할 때 집을 구할 수 있는지,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오래 안심하고 살 수 있는지가 더 절실한 문제다.
그런 점에서 주거안정플랜은 실행이 더 중요하다. 119만 가구가 실제 주택 공급으로 이어지는지, 필요한 사람이 제때 도움을 받는지, 제도를 이용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현장에서 꾸준히 살펴보려 한다. 지방 중심의 주거복지 전달체계도 전환한다. 기초지자체별로 주거복지센터 설치를 유도해 상담과 지원을 보다 편리하게 연결하고, 오래된 최저주거기준도 달라진 생활방식에 맞게 개편할 계획이다.
집이 안정되면 그다음을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당장의 주거비 걱정을 덜고, 가족의 변화를 준비하며,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차분히 그려 볼 수 있다. 주거안정플랜이 국민께 그런 ‘다음’을 생각할 여유를 드렸으면 한다. 정부도 119만호라는 숫자에 머물지 않고 그 집에서 살아갈 한 사람, 한 가족의 생활을 살피며 계획한 정책들을 속도감 있게 실행해 나가겠다.
김이탁 국토교통부 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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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탁 국토교통부 1차관
2026-10-0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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