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동아리, “서울대생 쓰던 펜·손편지 판매” 글 올렸다 비난 졸업생 “살 사람 있는 물건 파는 게 왜 죄가 되나” 옹호 전문가 “수요 있으니 무기 팔겠다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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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문 연합뉴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 있는 물건을 파는 게 잘못인가요?”
서울대 한 창업동아리가 서울대생이 직접 쓴 손편지와 펜을 수험생 등에 판매하려다 논란을 빚은 가운데 “학벌 상품화가 문제가 되느냐”를 놓고 때아닌 학벌주의 논쟁이 벌어졌다.
27일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자신을 서울대 졸업생이라고 밝힌 한 글쓴이가 “손편지가 마약·총기·독극물처럼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기꺼이 살 사람이 있는 물건을 돈 받고 파는 게 왜 죄가 되느냐”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세상에는 20대 초반이 되도록 변변한 성취 하나 쌓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은데, 질풍노도의 시기에 허벅지 찔러 가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에 온 정도면 자긍심을 가지고 자랑할 만하지 않은가”라면서 “그렇게 학벌 상품화가 싫으면 학교 기념품점에 야구 배트를 들고 가서 서울대 로고가 박힌 기념 초콜릿을 때려 부수고, 신입생이 과잠(학과 점퍼)을 입고 다니는 것이 보이면 그 자리에서 모두 벗겨내 불태우고, 대치동 학원가에 가서 서울대 출신이라고 광고하는 강사를 모조리 끌어내시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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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졸업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 대나무숲’에 남긴 글. 서울대 창업동아리 학생들이 서울대생들이 쓰던 볼펜과 손편지를 판매하려 했던 데 대해 “문제될 게 없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논리에서 물건을 파는 건 죄가 아니지만, 가치 판단은 남아 있다”는 반박이 나왔다. 한 학생은 “어떤 물건을 사고파는 게 허용되려면 사회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지 따져야 한다”면서 “마약 역시 투약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지만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학벌주의가 왜 문제인지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학벌이 신앙 수준으로 커진 것”이라고 짚었다. 최 교수는 “서울대생의 펜을 쓰면 마치 초자연적인 힘이 나와서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라면서 “이전부터 탑돌이, 새벽 기도 등 명문대 합격을 향한 주술적 요소는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학생 스스로가 상품화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비판했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학력은 더 이상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재산처럼 부모로부터 대물림되는 것인데, 이를 모르고 학벌 상품화가 왜 나쁘냐고 묻는 건 ‘수요가 있으니 무기를 팔겠다’는 무기 판매상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앞서 서울대 한 창업동아리는 24일 ‘중고나라’와 ‘맘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 “수험생을 위해 서울대생이 직접 쓴 응원의 손편지와 볼펜을 판매한다”는 제목으로 판매 홍보 글을 올렸다. 이들은 게시물에서 “수험생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드리고자 서울대생들이 직접 손편지를 쓰고, 공부할 때 사용한 펜을 판매하고 있다”면서 편지와 서울대생이 공부할 때 사용한 펜, 서울대 마크가 그려진 컴퓨터용 사인펜 등을 묶음으로 7000원에 판매하겠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