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누항 나들이] ‘가난은 우리의 무기’를 다시 생각할 때
수정 2009-05-20 00:50
입력 2009-05-20 00:00
가난 타령에 넌더리를 낼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정말 그 무렵 우리는 가난했다. 서울 변두리는 무허가 주택으로 빼곡한 빈민촌들이 차지했으며, 동네에는 공중화장실밖에 없어 아침이면 용변을 보고 버스로 등교해야 하는 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골목은 어둡고 침침해서 밤이면 여간 조심하지 않고는 신발에 오물을 뒤집어쓰기가 보통이었다. 아마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라면으로 점심 저녁을 때우는 노동자들이 없었으면 산업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보살피고 꿈을 가지고 살았으니 ‘가난은 우리의 무기’라는 에피그램이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이래서일 터이다.
말하자면 그렇게 가난할 때는 모두가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은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풍요라는 허위의식에 취해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고 버려둠으로써 그 말은 빛을 잃었다. 제각기 자기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가난한 이웃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아예 잊어 버렸다. 얼마 전 한 노숙자가 오랜 노숙이라는 고생 끝에 1억 2800만원이라는 큰돈을 모으고도 써 보지도 못하고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슬픈 사건이 그 사실을 잘 말해 준다. 그는 호적이 없는 사람으로 이름도 성도 나이도 모른다. ‘나해동’이라는 이름으로 십수년에 걸쳐 모아 저축한 큰돈이 있었지만 실명제가 실시되면서 그 돈을 찾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고물을 주워서 팔고 평생 리어커에서 웅크리고 자면서 모은 피맺힌 돈이다. 마침내 법원의 판결로 이름도 갖게 되고 돈도 찾게 되었지만 이미 그는 병이 깊어 돈을 만져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가난은 우리의 무기’라는 정서 속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도 서울역을 비롯해 이곳저곳에 수십명 수백명의 노숙자들이 우글거린다. 지하철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구걸하는 장애인을 만나게 되고, 공원은 무료급식으로 하루를 넘기는 노인들로 넘친다. 국민소득 2만달러라는 이 풍요의 시대에 말이다. “어린 것들 배도 못 채우는 아버지라니/ 중랑교를 넘어가는 밤버스에는 어김없이 예닐곱 노동자가 졸고/ 검푸른 냇물 위로는 어김없이 불빛은 번쩍이고/ 망우리 근처에서는 밥상마다/ 끓는 냄비에 마구잡이로 뜯어 넣은 수제비 같은 한숨”(‘가난은 우리의 무기’ 4연) 같은 풍경은 이제 우리 곁에서 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 부자 감세며 4대강 살리기 등에 역점을 둔 정책이 이런 풍경을 다시 만들어내고 있다는 일부 진단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나해동이나 “어린 것들 배도 못 채우는 아버지”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도 들린다. ‘가난은 우리의 무기’를 다시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시인 신경림
2009-05-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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