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성의 건강칼럼] 루브 골드버그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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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9-08 00:00
입력 2007-09-08 00:00
루브 골드버그(Rube Goldberg)는 온갖 기계장치에 짓눌리는 현대인의 일상에 대한 풍자로 유명한 만화가이다. 미국의 퍼듀대학에서는 매년 루브 골드버그 콘테스트가 열린다. 여기서는 창문을 닫거나, 신발을 신거나, 식사 때 입 닦는 일 등 우리가 일상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동작을 가장 어렵고, 복잡하게 처리하는 첨단 기계장치들이 경연을 벌인다. 쉬운 동작을 가장 어렵게 재현한 사람이 1등이 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로봇수술, 레이저수술, 컴퓨터수술처럼 첨단과학을 앞세우는 치료법에 대해서는 뭔지 모르지만 월등히 좋은 것으로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럴까.

척추 분야에도 여러 첨단 수술법들이 도입되고 있다. 내비게이션(Navigation) 수술법이 한 예이다. 이 방법은 최근 척추수술에서 많이 사용되는 기구인 나사못 장치를 컴퓨터 3차원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척추뼈에 쉽게 삽입하는 기법이다. 소개 당시에는 나사못 삽입에 따른 기존의 여러 문제점들을 다 해결한 것 같았지만 10년 정도 지난 현재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능숙한 척추외과 의사가 나사못 한 개를 삽입하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반면 내비게이션을 이용할 경우에는 15∼20분이 소요되어 수술 시간이 훨씬 길어지며, 정확성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로봇수술도 마찬가지다. 로봇이 아무리 뛰어나도 수술 시 요구되는 인간 두뇌의 종합적인 인지능력과 오감(五感), 섬세한 손놀림을 대신할 수는 없다. 현재 수술에서 사용되고 있는 로봇들은 가장 단순한 동작, 예컨대 내시경을 지지한다든가, 내시경의 높낮이를 조정하는 등 초보적인 일을 할 뿐이다.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수술하는 것은 의료의 어느 분야에서건 정말 요원한 일이다. 그럼에도 마치 로봇이 수술하는 것처럼 과장하는 기사나 광고를 흔히 보게 된다. 첨단과학을 연상시키는 치료법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다. 루브 골드버그 장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병원에서 첨단 치료법을 앞세운다면 상술(商術)이라는 관점에서 면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
2007-09-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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