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장군님 사진
기자
수정 2003-08-30 00:00
입력 2003-08-30 00:00
북한 응원단이 28일 오후 경북 예천군 예천읍 청복리 34번 국도 진입로 부근에서 갑자기 차를 세우고 예천지역 시민단체들이 내건 ‘북녘 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 등의 글귀가 씌인 플래카드 4개를 멋대로 거둬가 버렸다.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가리키며 (한쪽이 장승에 매달린 플래카드를 보면서) “허수아비에 장군님의 사진이 걸려 있다니.”,“장군님 사진이 이렇게 낮게 걸려 있다니.”,“장군님 사진이 비를 맞잖아요.”라며 마치 영정을 모시듯 플래카드를 들고 갔다는 것이다.사진 취재기자의 카메라는 빼앗았다가 밤에 돌려 주었지만 플래카드는 29일 낮까지 예천 주민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북한 선수단과 기자단에 이어 이번엔 응원단이 ‘파문’를 일으킨 셈이다.선수단과 기자단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녀 응원단의 고운 웃음에 홀려 있던 사람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플래카드를 철거했다는 소식에 눈이 휘둥그래졌다.허참 어떻게이해해야 좋을까.
평양 상주 특파원을 지낸 사회주의권 출신 기자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TV를 보면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해 발을 동동 구르며 열광하는데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돌아온 대답이 “TV카메라가 지나가면 그들도 팔 내리고 조용해져요.”라는 것이다.응원단의 행동도 ‘보여주기 위한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심하게 말할 수도 있다.공포정치는 개인숭배를 불러일으킨다.공포가 숭배를 가져온다는 게 괴이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탈출구가 없는 공포 앞에서 숭배를 택한다.스탈린 시절의 공포정치와 개인숭배도 그러한 예다.그러나 ‘공포정치와 개인숭배론’ 해석에 대해 북한쪽은 펄쩍 뛸 게다.장군님을 정말로 존경한다고 말이다.
지난 5년여 동안 북한에 햇볕을 쪼이면서 열린 사회로 나아가길 기대했던 마음에는 응원단의 행동이 무척 당혹스럽다.‘오냐 오냐’하다가 수염 잡힌 할아버지 신세라고 개탄할 이들도 많을 터이다.언제쯤이나 미녀가 아니라도 좋으니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북한의 ‘보통응원단’을 볼 수 있을까.
강석진 논설위원
2003-08-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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