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써놓는 장애아 부모 는다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2001-05-05 00:00
입력 2001-05-05 00:00
“장애 어린이들도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도봉구 창동에 사는 이모씨(38) 부부는 ‘눈물 반,희망 반’의 유서를 썼다.자신들의 사후(死後)에 정신지체 장애아인 아들 형규군(9)과 후원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아들의 장래가 늘 마음에 걸렸던 이씨는 “언제까지나 시름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입술을 깨물었다.기회가 주어진다면 앞으로 사회복지관에서 장애아 육아에 대한 강연에 나설 계획도 갖고 있다.

형규는 올봄 뒤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용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네가 막 걸음마를 하면서 한창 귀여움을 받던 93년 8월 어느날,갑자기 불덩이처럼 열이 오르면서 땀을 흘려 병원으로 업혀갔는데…의사는 ‘뇌신경 이상’이라며 날벼락 같은 판정을 내렸지.그 뒤로 너는 안타깝게도….” 이씨는 형규가 장애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을당시의 애타는 심정을 이렇게 기록했다.

비록 ‘장애인이긴 하지만 심성이 착해 장차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으로 자라라’는 희망도 적었다.

최근 사회복지단체들의 노력으로 국내에서도 이처럼 유서 쓰기에 참여하는 가정이 크게 늘고 있다.미국,일본 등 외국에서는 ‘부모의 희망을 담은 편지(Letter of Intent)’가 널리 알려져 있다.특히 이씨처럼 장애아 자녀가 외동인 부모에게는 기록이 더 필수적이다.

장애인 관련 법률 개정 등 중요한 정책이 바뀌거나 사회적 여건이 변화하면 그 때마다 빼놓지 않고 기록을 업데이트해야 한다.미리 후견인을 선정한 뒤 자녀의 장래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고 그 내용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다.자녀의 신체적 특징과 발달 과정,신·옷 치수,병세를잘 아는 의료진,장애아와 정서적으로 가까운 사람의 연락처도 필수 목록이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장애인을 위한 사회보장제,후견인제,전문 보험상품 등과 같은 법적,사회적 제도와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아 이같은 편지는 유사시에 장애인에게 도움을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다.사회복지 전문가들도“꼭 필요하고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라고 권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충현복지관 이동귀(李東貴·52)관장은 “부부 모두가 서명 또는 날인을 해 합의된 내용임을밝히는 동시에 비상시에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쓴 의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궁극적으로는 장애아의 나이와 상관 없이 법정 후견인을 둘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는 사회적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2001-05-05 1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