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소설집 ‘나의 자줏빛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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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5-18 00:00
입력 2000-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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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밖을 보더라도 모두 안으로 눈을 돌리지만 오래도록 안을 보는 작가는 드물다.안을 보는 데는 힘이 더 요구된다.

조경란의 소설집 '나의 자줏빛 소파'(문학과지성사)는 바깥보다 안을 더보려고 하고,더 볼 힘도 갖춘 작가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69년생으로 96년에 등단한 작가의 이 두번째 소설집 말미 해설에서 평론가 우찬제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인간 관계에 대한 탐문에 서사의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그리고 “탐문의 심도를 위해 작가는 존재의 뿌리로 내려가는 서사적 실험을 단행한다”고 해설은 강조하고 있다.

조경란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내적으로 고독하고 외적으로 불우한 처지에 빠져 있다.어둠이나 그늘과 더 친한 이들은 본능적으로 빛과 햇볕을 향해 손을뻗는다. 이들이 갈구하는 빛은 혼자만의 고독에서 벗어나고 타인과 원만히소통하는 것이다.평론가는 '진정한 인간관계'라고 고급스럽게 지칭하고 있으나 이들이 쬐기를 원하는 햇볕은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귀하고 드문 것은 결 코 아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이들이 빠져있는 '고립된 자아'의 그늘지고 어두운 현실은 엄청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한마디로 이들의 고독한 처지와 소통에의 몸부림은 '비근한' 것인데 작가는 감상과 군말없이 이를 절절하게 형상화해내는 힘을 보여준다.

표제작인 '나의 자줏빛 소파'는 작가의 여러 작품처럼 시적으로 비틀린 매우 은유적인 제목을 갖고 있다.사회적으로 별 보잘 것 없는 여주인공이 혼자에서 벗어나고 남과 소통하기 위해 수신자가 모호한 편지교환 클럽에 띄우는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서신이 독자앞에 펼쳐진다. 지목할 특정 수신인을 갖지 못한 사람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편지글 형식은 자주 차용되는 소설방식이지만 조경란은 신선하게 활용하고 있다.꼬집어 말할 큰 줄거리 없이 주인공의 소소한 주변 잡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독자는 지혈되지 못한고독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그래서 독자는 '웬 소파고 왜 자줏빛인가'라고 묻지 않는다.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감지되는 것이다. 죽은 영혼이 말하는 비현실적 방식을 택하고 있는 '잔의 밑바닥에 남아있는커피 찌꺼기의 무늬'를 비롯 '망원경' '녹색 광선' '유리 동물원' '식물들''아주 뜨거운 차 한 잔' '오늘의 요리' 등 수록작품 모두 주인공들의 비근한고독이 품위있게 돋을새김되고 있다.

김재영기자 kjykjy@
2000-05-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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