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이상일/ADB총회와 빈곤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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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05-05 00:00
입력 1999-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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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까지 5일간 아시아개발은행(ADB)총회가 열린 필리핀 마닐라의 중심가는 고급차들로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었다.세계 57개국에서 온 2,000여명의 정부 각료와 금융계 인사를 실어나르기 위해 마닐라의 모든 벤츠차가 동원됐다고 한다.

회의장인 ADB 본부 근처,하루 숙박료가 수백,수천 달러인 ‘에자 샹그리라호텔’ 등 최고급 호텔들에서는 각료들과 은행장들이 조·오찬과 각종 모임을 열었다.회의장과 호텔 안팎은 미국 등 여느 선진국과 다를 바 없다.

근처를 벗어나면 바로 여러명의 행상인과 남루한 차림의 어린이가 달라붙어 차창을 두드리며 물건을 사라고 하거나 구걸했다.인근 철로변에는 판잣집들이 즐비하고 거리에는 노숙자도 허다하다.60·70년대 앞서가는 ‘선진 모델’로 한국이 본받고 싶어하고 ‘통일볍씨’를 얻어온 나라 필리핀의 상반된풍경들이다.

빈곤문제는 이번 ADB총회에서 주요 의제였다.치노 타다오 ADB총재는 5가지장기 도전과제 가운데 최우선 순위로 빈곤을 꼽았다.“세계의 빈곤층 가운데 대다수가 아시아에 살고 있다.3명의 아시아인 가운데 1명은 안전하게 마실물을 구하기 힘든 상태”라고 그는 역설했다.

ADB는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의 금융위기로 빈곤층과 취약그룹(여성과 어린이)이 가장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금융위기로 각국의 실업률이 2∼4배씩 늘었으며 필리핀의 경우 1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이후 하위 20%계층의 소득이 감소하고 학교에는 결식아동이 급증했다.이규성(李揆成)재정경제부 장관은 “아시아 국가들의 빈곤감축을 위해 ADB가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물론 ADB에 한계는 있다.전철환(全哲煥)한국은행 총재는 “유고슬라비아 코소보의 전쟁으로 난민과 빈곤층이 늘어가는 데도 ADB총회에서는 아무도 코소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며 이기적인(?) 지역총회의 일면을 지적했다.



그러나 빈곤층을 줄이는 데 중요한 것은 주위 나라의 도움이나 지역기구보다는 정작 각국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ADB본부가 있는 필리핀이 수십년간 제자리 걸음을 하며 빈곤층을 양산한 데는 마르코스 정권의 부패와 정책실패가 먼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bruce@
1999-05-0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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