獄中喪主 김희로/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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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11-07 00:00
입력 1998-11-07 00:00
아들의 석방만을 기다리며 “한번만이라도 아들을 얼싸안고 싶다”던 金嬉老씨(70)의 어머니 朴得淑 할머니(90)가 지난 3일 숨졌다.5일 일본 시즈오카 현 가케가와시 시립양로원에서 있은 朴할머니의 장례식장에는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신 “오늘 아침 어머니께 편지를 쓰던 중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쏟아졌다. 장례식 시간에 맞춰 형무소에서나마 어머니를 보내드리겠다. 정말 어머니와 함께 가고 싶은 심정이다”는 金씨의 비통한 심정을 담은 편지만 날아와 지키고 있었다.

金嬉老. 그는 지난 68년 2월 일본 시미즈시에서 “더러운 돼지새끼 같은 조센진(朝鮮人)”이라는 민족차별적인 언동에 흥분해 야쿠자 2명을 총으로 살해하고 인질극을 벌이다 붙잡혀 30년동안 복역하고 있다. 인질극 당시 朴할머니는 “일본인에게 붙잡혀 더럽게 죽지 말고 꺼끗이 자결하라”고 권할 만큼 강골의 여인이었다. 그러던 朴할머니도 아들이 사건발생 7년 뒤인 75년 무기징역형으로 확정판결을 받은 뒤 수감생활이 길어지자 일본 법무성에 수도 없이 탄원하며 석방을 고대했다. “아들이 일본 법률을 어긴 것은 절반 이상 나의 잘못”이라며 “차라리 나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일본의 무기수는 확정판결을 받고 10년이 지나면 가석방 대상이 되지만 金씨는 그때마다 번번이 제외돼 지금까지 차디찬 감방을 지키고 있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기울인 석방노력도 간단하지 않다. 그 가운데 지난 90년 金大中 대통령과 金泳三 전 대통령 등이 서명한 10만명 석방보증서를 일본정부에 제출했던 석방운동은 특별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달 초 金대통령의 일본방문때도 이 문제가 실무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됐지만 결과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우리가 金씨의 석방을 바라는 이유는 비록 그 잘못은 크지만 그동안의 수감생활을 통해 충분히 반성했을 뿐 아니라 그 행위 자체도 개인감정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민족차별적인 일본인들의 이중성을 향한 우리 모두의 분노를 대변한 것이다. 30년째 일본 구마모토 형무소에서 복역중인 그는 일본에서도 최장기수다. 그의석방을 위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길 기대한다.>
1998-11-0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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