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총리 농수산물시장 방문 「경제 몸으로 느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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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8-20 00:00
입력 1996-08-20 00:00
한승수 경제부총리의 농수산물 도매시장 시찰 소감은 좀 뜻밖이다.그는 19일 새벽 3시부터 1시간에 걸친 시장탐방을 끝낸뒤 시장관계자·보도진들과 해장국집인 「정동 설렁탕」에서 한자리에 앉았다.
『수산시장에서 만져 본 생선이 춘천시장 것과는 많이 달랐다.춘천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팽팽하더라.춘천도 과일은 더러 나서 비슷한 것 같은데 생선은 영 다르다』얼핏 들으면 시골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할만한 소린 것 같기도 하다.달리 들으면 웬 생선타령이냐 할 수도 있는 게 부총리의 시장탐방 소감이었다.
해장국 집에서 부총리에게 물었다.업무파악이 대략 끝났을듯 한데 어떠냐는 질문이었다.그는 『현안중심으로 보고를 들어서 아직 우리경제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에 대한 종합판정은 내리지 못하겠다』면서 『다만 0.1%의 지수에 연연하기보다는 국민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게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한부총리는 지역구인 춘천서 유권자들을 만나보면 다른 것은 다 관심 없고,물가이야기만 한다고 덧붙였다.
한부총리팀이,언제까지 한국경제의 조타수 역할이 부여될진 모르지만,설정한 주정책테마는 「국민생활 안정」인듯하다.취임후 첫 방문지로 수출업체가 아닌 농수산 시장을 택한 점,이날 방문에서 농수산물 유통근대화를 위해 99억원의 자금지원을 약속한 것등에서 이런 점이 읽힌다.뜬금 없이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생선이 춘천 것보다 「팽팽」하다고 말한 것도 기자들에게 이런 정책방향을 「선문답」식으로 강조한 게 아닌가 이해하고 싶다.
한부총리는 취임이후 줄곧 경제현황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말은 쉽지만 이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특히 내년 대통령선거를 치러야하는 입장에서는(그동안 경질되지 않을 경우다) 나쁜 것은 숨기고,좋은 것은 과장해 홍보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다.
그가 국민에게 경제현실을 알리고 국민들의 솔직한 이해를 구할지는 두고 볼일이지만 19일의 새벽탐방에서 새경제팀의 정책집행 형태를 엿볼 수 있는 작은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관리공사의 김창호 사장은 현황브리핑을 통해 채소류 포장화 사업비 지원,하역기계화 사업 지원,새로 발족할 하역용역회사의 하역용역비에 대한 부가세면제를 요청했다.한부총리는 마이크를 잡고 포장화 사업비 52억5천만원,기계화 장비구입비 47억2천만원을 내년 예산에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부가세면제 요청에 대해서는 『조세체계가 흐트러지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질렀다.
현황브리핑에 이어 채소시장·과일시장·생선시장의 방문이 있었다.마지막 순서가 해장국집에서의 간담이다.이 자리에서 시장 관계자 4∼5명이 다시 하역비 부가세감면문제를 제기했다.한 관계자는 『도매법인의 산하법인으로 하면 부가세 감면대상이 될 수 있다』고 부총리에게 「진언」하기도 했다.한부총리는 『조세체계가 무너진다고 했다.다른 방법으로 지원할 계획도 없다.검토하지 않겠다』고 다시 확실하게 했다.검토해보자고 한뒤 다시 안만나면 그만일 수 있는 일이다.그런 점에서 그는 되는 것은 되고,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분명히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부총리는 20일에는 청주공단에 들러 수출산업 현장을 둘러 볼 계획이다.잇달아 경제관련 현장을 둘러 볼 계획도 짜고 있는듯 하다.수출기업에 가면 수출기업의 애로가 있고,모든 현장마다 애로가 있기 마련이다.때문에 그가 여러현장을 방문한뒤에 종합처방을 어떻게 내릴지는 좀더 두고 봐야한다.
다만 그는 최근 관련기관들에 성장률을 무리하게 끌고가려 하지말고,현재 경기상황에 적합한 성장률을 새로 제시하도록 한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거품없이 있는 그대로의 경제를 공개하고,체질을 강화하며 이를 통해 국민생활안정에 역점을 두겠다는 방침과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한부총리는 경우에 따라 매우 불행한 부총리로 기록될 소지도 있다.최악의 경기저점이 내년에 기다리고 있다.선거도 입을 벌린채 있다.부총리정도의 소신쯤이야 온데간데 없어질 수도 있는게 한국경제와 권력현실이다.
크지 않더라도 알맹이가 꽉찬 경제를 추구하는 신경제팀에게다음 행마를 기다려 본다.<김영만 경제부장>
1996-08-2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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