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북한 10대 뉴스/내외통신 선정
수정 1995-12-25 00:00
입력 1995-12-25 00:00
▷최악의 수해◁
지난 7월말부터 8월 중순에 걸쳐 신의주 등 서북부 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50만명의 이재민과 막대한 재산피해 등 북한사상 최대의 수재로 기록됐다.유엔인도국 조사단이 북한 전국토의 75%가량이 수해를 입었다고 유엔본부 외교단에 보고한 이번 수해로 북한은 전세계를 상대로 긴급 구호요청에 나서야 했다.
▷남북 쌀회담◁
남북한은 6월17일부터 4일동안 북경서 차관급 쌀 회담을 열고 북한측에 쌀 15만t을 전량 무상제공키로 합의했다.남한 쌀 2천t을 실은 씨 아펙스호가 6월25일 청진항에 첫 입항,남북화해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그러나 뒤이어 터진 씨 아펙스호 인공기 강제게양 및 삼선비너스호 억류사건등으로 남북관계의 새 앙금만 남겼다.
▷경수로협상 타결◁
지난해 10월 채택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경수로 공급협정 체결협상을 진행해오던 양측은 12월15일 협정문에 서명했다.그동안 큰 입장차이를 보이던 경수로 건설공사내용중 ▲송배전 시설과 핵연료 가동공장 건설비용은 북한이 부담하고 ▲경수로 발전소 부지내 도로 건설과 모의안전시험대 등은 KEDO가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86우성호 억류◁
5월30일 북방한계선 북방 16마일 해상에서 항로를 벗어난 한국선박 86 우성호가 북한경비정에 피랍됐다.북한은 남북 북경쌀회담서 우성호의 인도적 송환에 응할 뜻을 비췄다.그러다가 군부의 입김이 작용한듯 9월20일 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공화국 법률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며 강경 입장으로 선회하는등 우여곡절 끝에 12월22일 대남방송을 통해 12월26일 생존자 5명과 사망자 3명의 시신을 보낸다고 발표했다.
▷무장간첩 남파◁
9월 남파간첩 대동 월북과 운동권 포섭 등 지하당 구축임무를 부여해 김동식(33·본명 이승철)과 박광남(가명·31) 등 2명의 무장간첩을 제주도를 통해 침투시켰으며 이들은 10월24일 중부 내륙지대인 부여에서 1명은 사살되고 다른 1명은 생포됐다.북한은 지난 10월17일에도 임진강에 인민무력부 소속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려다 1명이 사살되는등 대남 적화적략을 포기치 않았다.
▷노동당 창당 50돌◁
지난 45주 당창건 행사에서 외국대표단을 대거 초청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대내 행사에만 치중,당연히 예상됐던 중앙보고대회를 생략한 채 이례적으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와 백만군중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오진우 사망◁
혁명 1세대 간판이자 군부의 대부이며 김정일 다음가는 권력 2인자였던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2월 폐암으로 사망함으로써 북한권력층의 변화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게 됐다.
▷김일성 시신 영구보존◁
지난 6월 당중앙위·당중앙군사위·국방위 중앙인민위 공동명의의 결정서를 통해 김일성이 집무실로 써오던 금수산의사당을 새롭게 단장,「금수산기념궁전」으로 성역화하고 이곳에 그의 시신을 안치해 영구보존한다고 발표했다.
▷신년사 공동사설로 대체◁
김일성이 새해 첫날 발표해오던 신년사를 올해는 김정일이 이어받지 않은 채 당보·군보·청년보 공동사설이란 새로운 형식으로 대신함으로써 김일성의 유훈통치가 계속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평양 체육문화축전◁
지난 4월말 김정일 체제의 위상 확립과 외화획득을 위해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체육 및 문화 축전」이라는 일대 정치쇼를 연출했으나 기대에 못미친 빚잔치로 끝났다.
1995-12-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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