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의 남침 결단(모스크바 새증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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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5-22 00:00
입력 1995-05-22 00:00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최초로 남침허용을 요청한 49년 3월부터 이듬해 1월 만찬장사건이 일어나기까지 10개월여 동안 적어도 표면적으로 스탈린은 전쟁 개시를 원치 않았다.49년 9월 툰킨 대사대리가 김일성의 옹진반도 점령계획을 보고한 것을 시발로 평양의 소련대사관과 모스크바 사이에 오간 전문들은 김일성이 남침 개시를 요청하고 스탈린이 이를 말리는 식으로 계속됐다.49년 10월30일부터 수일간 스탈린과 슈티코프대사간에 오간 전문들을 보면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기도를 막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가를 읽을 수 있다.
○“전쟁기도 못 마땅”
스탈린은 9월24일 당정치국결정을 통해 김일성에게 남침불가를 통보한 바 있다.그러나 슈티코프 대사는 그후에도 김일성이 옹진반도점령,해방구건설 등에 미련을 못버린다는 사실을 계속 보고했다.이 일을 두고 스탈린은슈티코프 대사를 크게 질책하기에 이른다.『10월30일.슈티코프 대사에게 엄중경고함.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조선에 대해 국지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긴 대사의 행동은 적절치 못함.그런 도발은 우리의 이익에 매우 위험하고 적으로 하여금 대규모 전쟁을 시작할 빌미를 주는 것임.대사의 행동은 전적으로 무책임한 것임』
크게 놀란 슈티코프 대사는 이튿날 곧바로 해명전문을 스탈린 앞으로 띄웠다.『본인은 북조선 내무성에 파견된 우리 고문관 보두아긴 대령을 통해 북조선이 38도선을 침범치 못하도록 엄중 감시하라고 지시했음.본인은 북조선당국에게 남조선을 무력침공하라는 충고를 결코 한 바 없음』
스탈린은 이 해명에도 불구하고 11월20일 당중앙위 명의로 재차 경고전문을 슈티코프에게 보냈다.『귀하가 제출한 해명은 전적으로 불만족스러움.이는 바로 모스크바가 내리는 지시사항을 귀하가 이행치 않는다는 증거임.38도선에서 어떤 긴장도 발생시켜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대신 귀하는 이 문제를 놓고 토의를 벌였음』 호된 질책을 당한슈티코프 대사는 이후 김일성의 남침계획 관련 보고를 중단했다.대신 남한의 북침기도에 관한 보고만 수차 스탈린 앞으로 더 보냈다.
그렇다면 스탈린이 이러한 초기 입장을 바꿔 김일성의 남침의사에 동조하게된 것은 언제,무슨 계기가 발단이 된 것일까.그것은 바로 중국내전에서 모택동이 승리한 것이다.중국공산당의 승리로 가장 크게 고무된 사람은 바로 김일성이었다.김일성이 만찬장사건을 일으킨 것도 사실은 모택동의 승리에서 얻은 용기의 일단을 보인 것이었다.중국공산당이 중국국민을 해방시켰으니 다음은 자기 차례라고 김일성은 생각했던 것이다.더구나 모택동은 중국내전만 끝나면 북조선을 도울 수 있다는 언질을 여러차례 김에게 했었다.1950년 1월30일 마침내 학수고대하던 답신이 스탈린으로부터 떨어졌다.모스크바에서 면담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소 차관 전용 허용
이날 스탈린은 전쟁불가를 고수하던 종전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다음의 전문을 슈티코프 대사 앞으로 보냈다.『…김일성 동지의 불편한 심기를 이해함.그러나 그가 지금남조선과 관련해 도모하려는 중대사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도 이해해야 함.무엇보다 큰 위험부담이 없는 쪽으로 일을 꾸며야 함.그가 이 문제와 관련,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나는 항상 그를 만나 이야기할 준비가 돼있음.이런 나의 입장을 김일성에게 전달하고 이 문제에 대해 내가 그를 도울 준비가 돼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 김일성과 스탈린 사이에 구체적인 남침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이 전문이 되는 셈이다.그러나 마치 면담허락의 조건인 양 스탈린은 이 전문에서 매년 최소한 2만5천t의 납을 소련에 공급해달라고 요구하며 『김일성이 이 요구를 거절하지 말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슈티코프 대사는 전문을 접수한 바로 그날 김일성을 만났다.이날 면담내용은 이튿날 스탈린 앞으로 보낸 보고전문에 상세히 기록됐다.『50년 1월31일.각하의 지시에 다라 김일성 동지를 만났음.김일성은 내가 전달한 내용을 매우 만족스럽게 받아들였음.동지께서 그를 만나겠다고 한 사실과 이 문제(남조선 해방문제)와 관련,그를 지원해 주겠다고 한 사실에 그는 매우 큰 감명을 받았음.김은 스탈린동지의 진의를 한번 더 확인하고 싶어 스탈린동지께서 바로 이 문제와 관련해 자기를 만나자고 한 게 분명하냐고 재차 물었음.본인은 이 전문내용으로 판단할 때 그렇다고 확인해주었음.김은 자기는 언제든지 스탈린동지를 만날 준비가 돼있다고 덧붙였음』 이와함께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소련이 요청한 납을 10∼15일 이내에 약속대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전문을 보낼 바로 그 시점에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은 모택동과 만나고 있었다.김일성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때 스탈린 모택동 두사람은 북한의 남침시 지원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그렇게도 전쟁을 애원했던 사람은 김일성이었지만 중국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함과 함께 북한의 남침문제에 대해서 스탈린 모택동 두사람이 이니셔티브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2월2일 스탈린은 슈티코프 대사 앞으로 다음의 전문을 보냈다.『…다음 사항을 김일성 동지에게 주지시킬 것.그가 나에게 의논하고자 하는 문제는 현시점에서 완벽한 보안이 유지돼야 함.북조선의 다른 지도자들은 물론 중국지도자들도 알아서는 안됨.이는 적에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함임.…중략…지금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는 모택동 동지와의 회담에서 우리는 북조선의 군사력과 방어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이를 도울 필요성과 방안에 대해 논의했음』
이틀 뒤 김일성이 먼저 슈티코프 대사를 만나자고 요청했다.그리고는 즉각 다음의 문제들을 제기했다.(대통령문서소보관.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50년 2월4일.김일성은 전군을 10개 사단으로 증강시키기 위해 추가 지상군사단을 편성하고 싶다며 본인의 의견을 물었음.본인은 이것이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답하고 우선 이에 필요한 물질적 자원이 있느냐고 물었음.아울러 이에 대해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음.김일성은 소련정부가 51년도 분으로 주기로 한 차관을 50년도에 쓸 수 있도록 자기가 직접 스탈린 동지에게 요청토록 해달라고 했음.그는 이 차관으로 3개 지상군사단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무기를 구입하고 싶어했음.본인은 이 요청을 본국정부에 보고하겠다고 답했음』
스탈린은 2월9일자 전문을 통해 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다고 답했다.그는 이 3개사단을 엘리트장교,현대식 장비를 갖춘 정예부대로 만들라는 별도주문까지 덧붙여 보냈다.다음은 전문내용.『김일성을 만나 3개사단 창설을 추진하라고 이를 것.이 사단들은 경험있는 장교들과 훈련 잘된 사병,현대무기를 갖춘 정예부대로 만들어야한다는 점을 그에게 유념시킬 것.51년도분으로 책정된 차관을 50년도로 전용시켜 3개사단 창설에 필요한 무기구입에 쓰도록 승인한다는 것도 알릴 것』
○「무력남침」못 박자
바로 이튿날 슈티코프 대사는 김일성을 만나 이 사실을 통보하고 곧바로 같은날 스탈린에게 그 결과를 보고했다.슈티코프 대사는 『김일성이 이 사실을 듣고 매우 기뻐했으며 원조에 대해 스탈린 동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몇번이나 되풀이 했다』고 보고했다.이후 김일성은 모스크바 방문준비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방문절차와 관련,모스크바와 평양간 수차례 전문이 오갔다.3월20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대사를 만나 방문날짜를 4월초로 잡고 박헌영을 대동하고 싶다고 말했다.아울러 이번 방문을 1946년도와 마찬가지로 비공식(비밀) 방문으로 하고 싶다고 주문했다.방문준비는 모두 마쳤으며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다음의 사항을 논의하고 싶다며 회담의제를 내놓았다. 김일성이 제의한 이 의제는 3월21일자 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①남북조선 통일 방안과 방법에 관해 ②북조선의 경제발전에 관해 ③가능하다면 당사업에 관해.
3월23일 슈티코프 대사는 이 의제를 더 상세히 정리해 다시 모스크바로 보냈다.①통일방안 ②경제문제 ③중·조선관계 ④아시아공산당,노동당의 협력문제 등으로 세분한 이 전문에서 주목되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이 ①항의 통일문제이다.그런데 3월1일자 보고전문에서 「남북조선통일 방안과 방법」으로 기술됐던 이 항목이 이틀 뒤의 이 전문에서 『남북조선 통일 방안과 방법.의도는 군사적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는 데 있음』이라는 쪽으로 바뀌어졌다.통일방안을 아예 「무력남침」으로 못박자고 김일성이 요청한 결과였다.<모스크바=이기동 특파원>
1995-05-2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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