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은 새빨간 거짓말”/박일 전김일성대학 총장(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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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1-03 00:00
입력 1994-11-03 00:00
◎46∼48년 김에 마르크스·레닌사상 가르쳐/빨치산으로 활약했다던 지점 못찾아내

『김일성이 만들었다는 「주체사상」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지난 46년9월부터 48년3월까지 만 1년6개월동안 김일성대학 총장을 지낸 박일씨(83·알마아타 거주)는 2일 『주체사상은 북한에 주둔한 소련공산당과 김일성측근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말했다.

46년10월 하순부터 48년1월초순까지 김일성의 개인교수로도 일한 박씨가 김일성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조선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하는데다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러·일전쟁때 부모들이 이주한 연해주에서 태어난 박씨는 37년 레닌그라드 국립교육대학에서 철학을 전공,졸업 뒤 키르기스공화국내 한 교육대학에서 마르크스·레닌 강사로 일하다 소련이 2차세계전쟁에 참전하면서 러시아교수들이 여기에 동원되는 바람에 철학교원이 없던 알마아타국립대 철학교수로 임명돼 44년부터 87년까지 일했다.

박씨는 해방과 함께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이 정책수행을 위해 동원한 지식인 가운데 유일하게 러시아어와 조선어를유창하게 구사,김일성대학 총장에 임명됐다.

박씨는 『대학총장 취임 3개월 뒤인 46년12월 어느날 북한주둔 소련군 참모부 민정장관이던 로마넨코 대장으로부터 김일성과 김일성대학 명예총장으로 있던 조선공산당 인민위원회위원장 김두봉에게 마르크스·레닌사상을 가르치라는 지시를 받고 김일성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35세였다는 박씨는 『동갑이던 김일성에게 스탈린이 지은 「소련공산당약사」라는 책자를 교재로 46년10월 하순부터 묘향산밑 김일성숙소에서 매일 아침 7시55분부터 1시간씩 강의를 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핵심부분을 비롯,책내용을 가장 알기 쉽게 설명했으나 이해를 잘 못해 결국 사회·인민·공산주의·사회주의·철학등 기본개념을 무려 2개월간이나 가르쳐야 했다』고 회상한다.

박씨는 47년5월까지는 하루에 한번씩 개인교습을 하다 이후로는 1주일에 3번씩 가르쳤으나 흥미를 잃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일성 지도를 맡은 소련군의 레베제프 대장으로부터 『「김일성은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이라는 내용을 담은 김일성혁명투쟁사를 김일성과의 좌담을 통해 책으로 만들라』는 지시를 받고 1년4개월동안 1주일에 2∼3번 김일성의 휴식시간인 하오6시부터 7시까지 좌담을 해 큰 노트 4권분량의 자료를 러시아어로 만들었으나 그 내용이 가짜인데다 허점투성이여서 결국 책을 출판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박씨는 『김일성은 빨치산으로 활약했다는 지점을 지도에서 지적하지 못하는가 하면 「유라(김정일의 러시아어 이름)가 어디서 태어났습니까」라는 질문에도 「알아서 뭐하겠느냐」며 대답을 회피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대학총장으로 있을 때 평양 및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마르크스·레닌강연을 하면서 「김일성만세」를 청중과 함께 외치지 않은데다 허가 없이 대학에 조선학과를 개설하고 소련군 장군들을 상대로 태극기에 대한 설명을 했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쫓겨났다.

6·25전쟁에 대해 『소련공산당 식민지정책의 부산물』이라고 잘라 말한 박씨는 『한국의 청년들은 안중근의사가 지닌 민족정신을 갖고 북한의 청년들이 「눈을 뜨도록」 도와줘야 한다』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을 하기 위해선 무식해선 안된다며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통일되는 날까지 살아 동포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싶다』는 박씨는 지난달 하순 서울에서 열린 북한민주화회의에 참석차 내한했다 3일 알마아타로 떠난다.<박현갑기자>
1994-11-0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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