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고사연구 방법론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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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0-17 00:00
입력 1994-10-17 00:00
한국 상고사 연구의 방법론을 놓고 고고학계와 사학계가 일대 논쟁을 벌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이는 세종대 최정필교수(고고학)의 논문 「신진화론과 한국 상고사 해설비판에 대한 재검토」가 발표되면서 표면화 했다.한국 상고사 분야가 고고인류학이론에 의해 장식되는 것을 경계해온 사학계의 학문연구태도를 꼬집은 최교수는 신진화론이 보편적 가설로 검증된 이론인 만큼 수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먼저 신진화론에 의해 한국 상고사에 적용될 수 있는 족장사회를 밝혀냈다.족장사회를 국가사회가 형성되기 직전의 사회형태로 본 그는 호남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한 1만2천8백여기(전남 1만1천·전북 1천8백여기)의 청동기시대 고인돌에서 그 증거를 찾아냈다.
전남 승주군 송광면 우산리 고인돌에서 나온 긴돌칼 17점,비파형동검 2점,옥제장신구 10점과 여천군 적량동 고인돌 출토품인돌칼 3점,비파형동검 7점,대롱옥 1점은 고인돌사회를 족장사회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특히 청동제품과 옥제장신구는 일반인들이 사영할 수 없는 상류계급의 전유물인 동시에 교역을 통해 지배층이 소유한 귀중품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그리고 고인돌사회는 직업의 전문화와 노동력동원에 따른 행정적 통제력이 요구된 사회라는 견해도 내놓았다.3∼4t에서 수십t에 이르는 돌을 운반,고인돌을 축조하자면 이같은 요구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최교수는 전남 해안지역과 보성강유역을 족장사회의 행정 근거지로 어림했다.왜냐하면 이 지역 고인돌에서 지배계급을 상징하는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학계는 가족수준의 집단사회→지방 집단사회→족장사회→국가사회로 이행되는 신진화론의 도식을 배제해왔다.고고인류학계는 족장사회를 청동기시대 또는 고인돌사회로 보는데 반해 사학계는 청동기시대이후 신라육촌과 삼한사회를 족장사회로 본다.또다른 사학계 한쪽에서는 신라 육촌의 경우도 족장사회가 아니고,고인돌사회(청동기시대)→소국→성읍국가→고대국가로 이어지는 국가형성단계 가운데 족장사회는 바로 성읍국가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어떻든 고인돌사회가 족장사회였다는 설이 제기되자 사학계는 한국 상고사를 서양의 도식화한 틀에 끼워 넣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족장사회를 성읍국가 이전 단계인 청동기사회로 올려잡는다면 족장사회의 상한은 신석기시대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학계는 이번에 문제가 된 최교수의 논문을 실은 「한국상고사학보」다음호(제17호)를 통해 반론을 펼 것으로 알려졌다.<황규호기자>
1994-10-1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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