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거래 미숙… 손님에 푸대접 “일쑤”(박강문 귀국리포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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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6-27 00:00
입력 1994-06-27 00:00
◎불선 물건 혼자 챙겨야… 배달 달포 걸려

「고객은 왕이다」 우리나라 가게에 더러 이런 표어가 써붙여져 있다.그러나 프랑스에서 고객은 왕이 아니다.

파리의 슈퍼에 처음 갔을 때 인상적인 것은 계산대의 계산원 아가씨나 아주머니들이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것이었다.

계산원은 계산만 할 뿐이며 그가 바코드 판독기에 읽히고 밀쳐놓는 물건들을 잽싸게 비닐 주머니에 담는 것은 손님이 할 일이다.처음 얼마동안은 손수 담는 게 습관이 안돼 멍청히 서있다가 계산원의 눈총을 받고서야 허둥지둥 서둘러야 했다.

슈퍼 매장내에는 물건을 창고에서 꺼내와 선반 위에 정돈하는 종업원들이 있다.이들은 자신의 임무란 오로지 물건을 선반에 올려놓는 일뿐이라는 듯 손님이 무슨 물건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건성으로 듣고 대개 모른다는 대답이다.

이들이 물건을 선반에 정리하려고 오면 방해되지 않도록 잘 비켜주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밀어 닥치며 『파르동』(미안합니다)이라고 하는데 이 소리가 꼭 『뭘 꾸물대.저리 비켜』 하는 것으로 들린다.

고객이뭘 훔치지 않나 살피는 건장한 남자 감시원들이 장승처럼 서있는 것도 고객 모두를 우범자로 보는 듯해 기분 나쁘다.

백화점이라고 해서 그리 나을 바는 없다.면세 데스크에 앉은 점원이 외국인 고객에게 왜 불어가 서투르냐고 핀잔 주는 꼴도 본다.

물건을 고르고 나서 점원을 찾으면 어디 있는지 안 보인다.제자리를 떠나 다른 점원과 잡담하고 있기가 일쑤다.손님끼리 점원으로 착각하는 일도 벌어진다.

문닫기 30분전만 돼도 손님이 접근하면 짜증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이때쯤은 퇴근후 만날 약속전화도 해야하고 화장도 고쳐야하는 시간이다.

개인 상점은 대개 처음엔 친절하지만 거래가 성사될 기미가 없으면 태도가 싸늘해지는 것이 보통이다.안보이는 물건을 찾으면 『없다』고 한마디 하고는 그만이다.『우리한테는 없지만 모퉁이를 돌아 두번째 가게에 가면 그 물건이 있다』 한다든가,『사흘 뒤에 다시 오면 살 수 있다』하고 일러주는 친절은 기대할 수 없다.

프랑스 사람은 역사적으로 유능한 장사꾼으로 훈련되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전통적으로농업국가였던데다가 물산이 풍부해 대개 자급자족이라 사고 파는 일에 딴 나라 사람들보다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는 사는 형편이 여유가 있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10년이 넘게 진행되어온 사회주의 정책 때문이라는 설명도 이와 연관된다.한번 고용되면 사용주가 쉽사리 해고하지 못하고 해고되더라도 실업수당으로 살아갈 수 있다.

친절과 불친절을 떠나 점원들이 자기 임무를 제대로 숙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백화점 안내데스크에서 엉뚱하게 일러주어 헤맸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서 들었다.

애프터서비스도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하면 처진다.프랑스 원자로를 들여오고 나서 사후 처리문제 때문에 한국의 관계자들은 속을 썩혀야 했다.테제베 도입을 검토할 때도 우리 상공부 관리중에는 이를 걱정하는 이가 있었다.

「다르티」라는 가전제품 연쇄점은 확실한 애프터서비스와 빠른 배달,불량 상품 교환 보장으로 신뢰도가 높다.다른 데서 더 싼값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차액을 내주겠다는 약속까지 한다.알고보니 영국계 진출기업이었다.

가구류를 백화점에서 사자면 배달기간이 달반이나 두달 걸린다.주문 받아 거래 공장에 전하고 일요일 빼고 축일 빼고 종업원 휴가 빼고 남는 시간에 일 시키니 그만큼 걸린다.그래서 구입한 물건을 자기 차로 바로 싣고 올 수 있는 「이케아」라는 조립식 가구 전문 스웨덴 가게가 인기있다.이 가게는 일요일도 연다.

프랑스 상인들이 모두 불친절한 것은 물론 아니다.태도도 문제지만 우선 상거래 관습이 소비자 위주로 돼있지 않고 기업의 경쟁의식이 치열하지 않다.프랑스인들은 발명과 상품 제조에 재간이 있는 만큼 장사 수완은 없는 듯하다.<파리특파원>
1994-06-2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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