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 성숙한 의정상보였다(사설)
수정 1992-11-20 00:00
입력 1992-11-20 00:00
14대 첫 정기국회인 이번 국회는 대선과 관련된 정치공세의 가열로 정상운영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 당초의 예상이었다.특히 자치단체장 선거연기문제,연기군관권선거 폭로사건 등으로 조성됐던 경색정국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짙게 했었다.
지금와서 보니 그건 기우였다.쟁점법안과 추곡수매를 둘러싼 극한대결도 없었고 집권당의 독주도 없었다.야당의 몸싸움,의사봉뺏기,농성등 물리적 저지도 자취를 감췄고 반대를 위한 반대란 말도 회자되지 않았다.예산안도 정부원안규모대로 처리됐다.모두가 이례적인 일들이다.
국회가 이처럼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무엇보다도 노태우대통령의 탈당과 중립내각의 출범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대선을 앞두고 중립내각을 흔들어서 득이 될게 없다는 3당의 정치적 계산이 국회를 차분하게 만든 이유의 하나임은 분명하다.절반으로 단축된 짧은 회기도 공전과 파행운영을 허용치 않은 요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3당의 성숙한 정치력이 「순항국회」를 낳았다고 말하고 싶다.이번에 3당은 합의의 정치를 중시하면서 자제력과 타협력을 적극 발휘했다.민감한 사안인 지자제법 개정안과 안기부법 개정안 등의 심의처리는 3당합의로 내년으로 미뤘다.그래서 격돌이 없었고 변칙처리가 없었다.이러한 긍정적 변화가 앞으로도 지속돼 우리 국회의 관행과 전통으로 뿌리내리길 바라마지 않는다.
이번 국회가 성숙도를 높였다고 해서 우리 의정의 문제점이 모두 해소됐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시도에 대한 국정감사는 지방의회로부터 반대와 방해를 받았지만 국회와 지방의회간 영역에 대한 재조정 없이 넘어가 버렸다.대선분위기에 휩싸여 예산안 심의등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됐다는 소리를 들었고 민생관련 주요경제법안의심의는무더기로보류됐다.
각종 이익단체들의 맹렬한 로비때문에 심의가 지연·유보되거나 내용이 희석된 법안도 적지 않았다.로비에 밀려 서화및 골동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시기를 3년 연기한 처사는 우리 국회도 선진국병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대통령선거법개정안은 의결한지 14일만에 3당대표에 의해 재개정론이 제기될 정도로 비현실성을 드러냈다.
이런 문제점들이 하루 아침에 개선되긴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이번 국회가 보여준 성숙한 자세는 낙관론자들의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1992-11-2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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