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기 「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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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10-08 00:00
입력 1992-10-08 00:00
「김일성이 자신의 가계를 우상화하기 위해 우리 역사 자체를 날조·왜곡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신당지기로 밝혀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에 나온 「세기와 더불어」에서는 종전보다 한술 더 떠 허황된 역사를 꾸몄다는 사실이다.김일성은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증조할아버지는 남의 묘를 봐주는 신당지기였으나 나라와 향토를 열렬히 사랑하는 분이었다.미제침략선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두루섬에 정박하고 있을 때 증조할아버지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집집에 있는 밧줄을 다 모아 강건너 곤유섬과 만경봉 사이에 겹겹이 건너 지르고 돌을 굴리면서 해적선의 앞길을 가로막았다.셔먼호가 양각도 밑에까지 기어들어 대포와 총을 쏘아대면서 주민들을 살해하고 재물들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마을사람들을 데리고 줄달음으로 평양성에 들어갔다.그때 성안사람들은 관군과 함께 나뭇단을 가득 실은 마상이 여러척을 연결시켜 불을 지르고 셔먼호쪽으로 띄워내려보내며 배도 해적들도 모조리 수장해버리었는데 증조할아버지도 여기서 한몫 단단히 하였다고 한다」<주1>
김일성은 이렇게 금방 보고 온 것 같은 임장감이 넘치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만경대 앞의 곤유섬을 지나 또 그 앞의 두루섬에 정박했을 때 김응우가 촌사람과 함께 곤유섬과 만경봉 사이에 밧줄을 건너 지르는 일을 했다는 말은 분량이 방대하기로 유명한 조선전사에도 단 한마디 언급이 없다.거기에는 이런 서술이 있을 뿐이다.
「해적선이 대동강에 기어든 이래 그의 동태를 경각성 있게 주시하시던 김응우선생님…」<주2>
○12년후 영웅으로
주시란 지켜 본다는 말인데 해적선이 올라 오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던 김응우가 봉우리와 섬 사이에 밧줄을 치는 영웅으로 둔갑하기 위해서는 이 조선전사가 발간된 후 다시 12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던것이다.
셔먼호가 칩입한 것은 김일성이 이러한 말을 한 1992년부터 계산하면 무려 1백26년이나 되는 아득한 옛날의 일이다.그가 태어나기 42년 전의 이야기이기도 하는데 그의 할아버지조차 이 사건이 있었을 때 태어났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증조 김응우는 1878년에 31세로 죽었다.<주3>셔먼호사건 당시 그는 19세였는데 가령 조부가 그 이전에 태어났더라도 다섯살을 넘지 못할 연령일 것이다.금방 보고 온 것 같은 김일성의 말은 조부,부친을 제쳐두고 도대체 누구에게 들었겠는가.김일성의 「혁명적가정」이란 그 창시자부터 이 모양인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주민들은 이러한 날조를 날조라고 분석비판할 권리가 없다.그들은 「김일성혁명력사 연구실」에 가서 혁명전통학습의 일환으로 학습강사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그 강의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경애하는 수령님의 가정은 100여년간에 걸쳐 대를 이어 오면서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싸워온 위대한 혁명적 가정이다」<주4> 화제를 김일성의 가계로 돌리겠다.
그의 증조부 김응우는 이상과 같은 「혁명적가정」의 시조이지만 한편으로는 북한의 최대 관광지인 김일성의 「만경대 고향집」에 살기 시작한 시조이기도 하다.
평양 중성리에 살고 있었던 김응우는 1860년대에 평양 지주 이평택의 묘지기가 되어 만경대에 왔는데 「만경대 고향집」이란 이평택의 상당집이 중심이 되어 증설된 초가집이다.
김응우는 윗대와 같이 계속 독자를 두었다.그러나 김응우의 아들 김보현은 이보익과 결혼하여 6남매를 낳았다.3형제는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과 그 동생 김형록·김형권이고 3자매는 이번 회고록에서 그 이름이 처음 공식적으로 밝혀진 김구일녀·김형실·김형복이다.김보현과 이보익은 만경대의 평범한 농민으로서 해방후까지 살았다.
○만경대집의 시조
김형직의 3형제중 만경대에 남은 것은 차남인 김형록 뿐이었다.회고록에 의하면 그의 처 이름은 현양신인데 이명영교수는 현양심으로 표기하고 있다.이교수에 의하면 이들 부부 사이에는 영주·원주·창실·원실 기타 2명 합계 6명의 자녀가 있었다고 한다.<주5>
이러한 가족 성원들 중 북한에서 「혁명가」라고 선전하고 있는 인물은 김보현의 3남인 김형권과 김형록의 차남인 김원주 2명이다.
김형권은 모종의 독립운동을 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그에 대한 객관적인 활동경력이 입수되지 않고 있다.그는 만주에서 결혼하여 딸 하나를 두었다.이 딸의 이름은 회고록에서 영실이라고 밝혀져 있다.해방후 만경대혁명학원을 다녔지만 한국전쟁 때 폭사했다 한다.<주6>
김원주는 해방전 강선제강소의 소년공이었고 역시 모종의 사회운동을 한 모양이다.그는 57년에 병사하였다 한다.<주7>
이외에 김일성의 동생 김철주가 있는데 그는 본문에서 다시 연구할 것이다.
이상을 보면 김일성의 소위 「혁명적가정」이란 증조 김응우와 부친 김형직을 빼면 그리 대단한 인물을 배출하지는 않았다.
<주해1>「조선전사13」 1980년 발행 76면
<주해2>같은책
<주해3>「우리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 선생」1984년 발행 7면
<주해4>「김일성원수 혁명력사 학습제강」(상급반용) 1982년 조총련 중앙발행 15면
<주해5>「4인의 김일성」이명영저 일본 성갑서점발행 235면
<주해6>「세기와 더불어」92면
<주해7>「력사사전」참조
1992-10-0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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