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ML주의 포기와 한반도 파장/최평길 연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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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7-28 00:00
입력 1991-07-28 00:00
소련은 현재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고르바초프가 54세의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된 것 자체가 이변이었다.1985년 3월11일 서기장이 되면서 그는 『소련사회를 경제적으로 능률이 있고 사회적으로 자율성이 있는 진정한 인간적 사회주의로 탈바꿈하자』고 주장했다.그래서 90년까지만 해도 인간적 사회주의,즉 스탈린시대의 유물을 청산하고 레닌시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사회주의의 르네상스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정의되고 제창되었다.
90년에 들어오면서 이같은 애매한 어휘는 다당제·시장경제로의 전환·탈냉전시대에서 방위에만 전념하는 소수 정예군·군수산업의 민수산업으로의 전환·핵무기 감축·각 공화국의 자율권보장등 서방세계에서나 관행이 되는 보다 구체적 개념으로 소련 사회개혁의 표상이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91년 오늘에는 소련사회의 가장 근본적 토대였던 공산당 계급성을 포기하고 말았다.
헤겔의 변증법,상시몽의 사회주의개혁론,영국의 복지경제 이론에 힘입어 1백25년 전에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저술한다.대부분의 임금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에게 일한 만큼의 대가는 받지 못하고 항상 착취하므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폭력으로 응징되어야 한다는 자본론의 논리는 상당한 매력이 있었다.인류 역사를 가진자와 갖지 못한자의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는 공산당 이론은 척박한 땅 소련사회에 적응되어 74년이 지나왔다.
그러나 개인의 재산소유가 인정되지 않는 소련은 소수의 공산당 지도층과 관료가 거대한 재산을 통제하면서 공산혁명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시하는 민초에게는 생존권 마저 박탈하는 전제정치를 하였다.여기에 미국과의 대결에서 생산비의 우위개념도 없이 군수용의 중공업정책을 추진한 나머지 이제 소련국민은 생필품의 절대 부족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전체 근로자·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소련공산당은 국내외의 압력에 눌려 이제는 더이상 무산자계급을 위해 투쟁하고 그들을 대표한다는 강령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것이다.
출발당시에는 개혁진보파였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어느새 집권정당의 대표로 중도파가 되었고 공산당을 탈당하여 대중정치로 위상을 확보하려는 옐친주도의 민주강령파,그리고 토지를 포함한 사유재산의 인정,주식형 기업의 인정등을 통하여 빠른 시간안에 민주적 사회주의,사회적 민주주의사회로 탈바꿈하고자 하여 야코블레프와 셰바르드나제에 의해 조직되는 공산당내의 온건개혁파가 나오고있다.이것은 바로 공산 일당의 당우위국가는 와해되고,공산당은 다당제 속의 일개 보수정당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민주국가의 다당제 정치로 변신하는 신호탄이 된다.
공산당이 무산자계급을 대표하지 않겠다는 것은 계급정당에서 대중정당,국민의 이익표출을 결집시키고 직업적 정치단체로 체질변경을 하겠다는 표시이다.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연방조약과 신헌법이 올해안에 최고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연방대통령도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될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광범위한 국민지지기반을 가진 대중정당을 조직하지 않을 수 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현재 소련 공산당에는이념적 해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물론 당의 주요간부가 속속 당을 떠나 대통령실과 정부기관으로,혹은 옐친 진영으로,각 공화국 정부로 일자리를 옮기고 있다.이같은 공산당 해체작업과 다당제의 부상,그리고 대중정당의 지지기반에 근거한 직선제대통령이 지방공화국과 연방공화국으로 확산되고 시장경제가 신속히 정착되게 하려는 일련의 노력은 소련이 서방세계에 현재 요청하고 있는 사회주의 피해 복구를 위한 마셜플랜 지원에 서방이 동정적이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제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 르네상스를 부르짖던 초반기의 개혁을 공산당은 무산자를 대변하는 정당임을 포기하는 공산주의 이상향으로 가는 사회주의 자체를 포기하는 2단계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일단계의 와중에서 동구권은 민주화가 되고 시장경제 원리에 따르는 사회가 되었다.
일단계에서 잘 버텨낸 중국·북한·쿠바의 집권당이 공산당 해체라는 이단계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주화 요구의 시련을 이겨내고 고립과 보수회귀를 계속 고수할 수 있는 역행적 체제능력이있을지는 의문이다.천안문사태 이후 실물정치 개혁파인 50대인 천진 시장 이서환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그리고 상해 시장 주용기를 부총리로 배출한 상해·천진에서 만났던 일부 공산당 간부들은 말하기를 『공산당은 변화되고 개혁은 직속되며 공산당이 변모되어 다당제가 되어도 겁날 것이 없다.경제·정치개혁의 업적을 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까지 말하기도 하였다.
북한에는 50년 전후에 소련·헝가리·체코 등에 유학후 경제기업소·지방행정 분야에서 민생 실물정치로부터 정치위원이 된 50∼60대의 개혁파 지도계층이 있다.총리 연형묵,강성산,당 국제부장 김용순,당 재정경제기획통 박남기 등은 남북경제교류를 주장하고 있다.한편 대외무역,경제협력,외교분야에서 국외사정에 정통한 중간관리계층은 북한 대외고립 탈피를 일상 업무처리과정에서 요구하고 있으며,최근 모스크바·부다페스트·동백림에서 유학했거나 유학중인 20대의 대학생,초급 군간부들은 그들이 체험한 동구권의 민선대통령,민선수상을 보고 북한의 차세대 지도자는 다당제에 의해 직전제로 선출되기를 주장한다.
이같은 흐름은 소련의 공산당 해체와 다당제에 의한 직선대통령 선출,여야당이 있는 의회제 정치를 가속화시킬 것이다.북한은 이같은 정치개혁 압력과 시장경제 도입,대외고립 탈피,남북경제교류의 복합적 압력에 놓이게 될 것이고 합리적 자기개혁에 바빠질 소련은 비합리적 체제보존의 들러리는 안할 것임이 확실하다.
1991-07-2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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