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행위는 없어야 한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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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5-03 00:00
입력 1991-05-03 00:00
또 분신자살을 기도한 한 대학생을 우리 모두는 보고 있다. 전남대의 여학생에 이어 안동대생의 분신기도에서 그저 참담한 심경을 갖게 된다. 이렇게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을까 하는 데서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나 이 같은 생명포기 행위가 이번만으로 그칠 것 같지가 않아 걱정이다.

결론부터 말해 더 이상 자해행위는 없어야 한다. 더더구나 분신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위는 안 된다. 생명포기행위자체가 죄악이라는 것에서 물론 그 같은 자해행위가 어떤 이유에서건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어째서 분신자살이라는 극한적인 방법을 택했는가. 이들의 자살기도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강경대군 치사사건에 격분했고 또 우리 사회의 비리·부조리에 참을 수 없어 자기희생을 통해 문제를 부각시키고 나아가 일반에 경종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또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파급효과를 기대한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순간적인 격한 감정이 충동적으로 자살에 이르게 한 점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죽음으로써 표현하고 극대화하겠다는 것이 또한 젊은이의 속성이라는 데서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아무리 타당성을 갖고 있다 해도 젊은 죽음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나 뜻이 죽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또 우리가 지금 그런 사회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그러하다. 생명포기는 목적도 포기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음미해야 할 것이다.

시위는 자기의 주장을 시위라는 방법을 통해 표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 방법으로 의사를 나타내고 관철시키려 시도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시위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 같은 시위에 언제나 폭력이 뒤따르고 있어 문제가 돼 온 것이다. 극한대립·격렬시위가 되풀이되고 그런 화염병과 최루탄의 공방전이 화를 불러온 게 사실이다. 시위문화의 정착이 그래서 요구돼 온 것이다. 그런 때에 분신이라는 잇단 참극은 자신의 생명마저 포기하는 또 하나의 과격행위로 비쳐지게 되는 것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이상을펼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대학생이고 젊은이여야 한다고 여긴다.

강군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그 같은 잘못된 치사사건에 격분한 나머지 극한적인 행동이 뒤따른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해도 그것은 너무나 쉽게 귀중한 생명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지금 우리 사회 각계의 목멘 호소를 젊은이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 호소는 바로 생명은 고귀한 것이고 자해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투쟁방법이나 진압이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고 그것이 값진 것이다. 분신자살과 같은 불상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젊은이들의 고뇌가 포용되고 나아가 사회의 비리를 추방하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임을 다시 강조한다.

이번의 강군 치사사건이 시위를 둘러싼 악순환의 되풀이를 막고 시위문화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때 이들 젊은이의 죽음이나 자살기도가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1991-05-0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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