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자도 듣는자도 모두가 패배자/국회증언 방청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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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1-01 00:00
입력 1990-01-01 00:00
31일 열린 전두환 전대통령의 「역사적인 증언」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모두가 패배자라는 점이다.
증언대 앞에 선 전 전대통령의 모습은 당당했다. 흡사 현직대통령의 국회 국정연설을 연상시킬 만큼 그는 당당하고 또렷한 음성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에 답해나갔다. 그는 현직대통령에 버금가는 경호를 받았으며 많은 여당의원으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증인 전두환」일 뿐이었다. 화려한 7년의 대통령 재직에도 불구하고 그는 증언대에 섬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승리자 아닌 패배자로 기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증인이 패배자로 기록된다면 그에게 증언을 요구하고 청취한 여나 야ㆍ국민 어느쪽은 승리자여야 한다. 하지만 어느쪽도 승리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국민이 알고자 했던 새로운 진실은 나타나지 않았고 국민들은 실망감을 더했을 뿐이다.
전 전대통령은 지난 1년반 동안 국회가 집요하게 추궁했던 사안들에 대해「아니다」와 「밝힐 수 없다」로 일관했다.
정치자금과 관련해 그는 『민정당 이외의 특정인에게 정치자금을 준 사실이 있었느냐는 질문이 있었으나 그러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는 바』라고 말해 12ㆍ16 대통령선거와 관련한 야당에의 정치자금제공설을 공식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나라의 경우 평화적으로 정권을 인계하고 나온 어떤 통치자도 정치자금의 내역을 공개해 왈가왈부하는 사례를 본적이 없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기 싫다기보다는 입을 열게 됨으로써 과거청산의 마무리가 아니라 청산의 새로운 시작이 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6ㆍ29선언에 대해 전 전대통령의 답변은 더욱 모호하다. 『어느 시대 어느 정치사회를 막론하고 이면사는 있게 마련이지만 그때 그때 속속들이 알려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6ㆍ29선언에 대해서는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이 어떻게 실현되었으며 어떻게 국가이익에 기여하고 있는가가 중요하지 그 경위나 배경을 새삼스럽게 들추어내는 일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대표위원이 단안을 내렸다는 지금까지의 정설을 확인해주지도 않았고 6ㆍ29는 「전두환작품」이라는 후설을 부인하지도 않은 것이다.
청문회장에 앉아 있던 여야의원 모두가 정작 「증인 전두환」의 입을 통해 정치자금 모금과 배분이 상세히 밝혀지기를 원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원하기는 했더라도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은 의원도 있었을지 모른다.
6ㆍ29선언에 대한 이면사도 정치자금문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들 사안에 대해 전 전대통령이 「진실」을 밝혔다면 그것은 이름그대로 「폭탄선언」이 된다. 정치권에 「혁명적인 상황」이 발생할 것이란 게 정치권의 공동인식이다.
「폭탄선언」을 하지 않고도 유일하게 여야와 국민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은 「새로운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거나 증인 자신을 스스로 모욕하는 일밖에는 없다. 그러나 전 전대통령은 진실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거짓말로 자신과 국민을 기만하는 일을 거부했다.
일국의 대통령을 7년이나 역임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더이상 능멸하기 싫었기 때문이든지 역사를 오도하기보다는 「공백」으로 메워두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폭탄선언」을 해도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거짓말을 해도 역사를 잘못 기록하는 진퇴양난 속에서 전두환증인은 서 있었던 셈이다. 또한 그러리란 전망은 책임있는 여야정치인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전 전대통령은 증언 모두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아직 한번의 선례도 없는 전직대통령의 국회출석증언이라는 오점을 우리 헌정사에 남기게 된 것은 저의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과오가 될 것』이라고 밝혔었다. 전 전대통령의 말대로 그것은 「과오」였다. 증언자와 증언청취자가 모두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 「하지 말아야 할」 증언을 한 것이다.
전직대통령의 증언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유일하게도 그를 증언대로 끌어올려 그를 충분하게 모욕해준 것 뿐이었다.
혹자는 그것만으로 청문회의 의미가 있으며 역사적인 교훈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함이 아닌 밝혀낼것으로 기대되지도 않았던 전직대통령의 증언은 유치한 정치보복일 뿐이었다.
증인이 참석해야만 의사진행을 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증언대를 향해 명패를 날리고 「살인마」를 외쳐대는 야당의원들의 행동에서 청문회의 목적은 분명해졌다.
우리는 아직 하나의 사건을 놓고도 지역마다 쓰는 「역사」가 다르다. 더많은 세월이 흘러야만 「역사」는 지역성을 뛰어넘어 기술될 수 있을 것이고 그때쯤 비로소 증인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김영만기자>
1990-01-0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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