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려간 아가씨 10명이나
수정 2008-10-27 11:31
입력 2008-10-27 00:00
10번째 걸려든 아가씨가 맨발로 탈출, 경찰에 고발
서울 성동경찰서는 8일 불과 14일동안에 10명의 처녀들을 팔아넘긴 일당 3명중 김장예(金長禮)씨(40·전북 익산국 왕궁면 도순리)와 양금수(梁金洙)양(21·서울 영등포구 신림동)을 검거하고 박(朴)모양(23)을 수배했다.
이들은 구랍20일부터 지난 3일 사이에 10명의 처녀들을 꾀어 시골 인신매매시장으로 데려가 한 사람에 1만2천원을 받고 팔아먹은 혐의.
이들의 꼬리가 경찰에 잡힌 것은 10번째의 처녀 김(金)모양(21·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 시골의 인신매매시장에서 맨발의 탈출에 성공, 경찰에 고발한데서였다.
『세상에 이런 도둑놈들이 있을 수가…』
7일 새벽 성동경찰서에 달려온 김양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치를 떨었다.
김양은 지난 3일 신문광고를 보고 연락처로 적힌 72-7503번에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광고를 보고 전화했읍니다만, 어떤 곳인지-』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아가씨를 만나봐야겠으니 하오 3시 정각에 신설동 우체국 앞에서 다시 전화를 주시지요』-상냥한 아가씨의 목소리가 친절하다.
전화걸면 교묘하게 유인 신원·경력 넌지시 캐물어
신설동에 있는 다방이려니 생각하고 이미 취직이 된 듯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누르며 약속대로 하로3시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예의 상냥한 목소리가 차림새를 물어 온 뒤『잠깐만 기다리고 계세요. 곧 나갈 테니…』
이때의 기쁨이야 말로. 조금 뒤 한 처녀가 김양에게 다가 왔다.
이 처녀가 경찰에 잡힌 양양. 양양은 김양을 신설동 K여관으로 안내했다.
K여관에는 양양과 함께 잡힌 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김양이 전화를 건 연락처는 광화문 근처의 모 「빌딩」5층, 이곳에서 수배중인 박양이 전화를 받아 김씨와 양양에게 지시한 것.
김씨는 김양에게 간단히 신원과 경력을 물은 다음 이만하면 자기네들의 그물에 걸려들었다고 판단했음인지 넌지시 직장이 시골이라고 밝혔다.
『의향이 없으시면 그만 두시죠. 지원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직장이 시골이라는 걸 알고 실망, 망설이던 처녀들은 보통 이 말에 떨어지고 만다는 것.
미모따라 몸값 떨어지고 불량배들이 일일이 감시
김양은 잠시 망설였으나 마음을 다그쳐 먹고 시골이라도 좋다고 달라붙었다.
약속한 시간에 김양은 짐을 챙겨 고속「버스」「터미널」에 나갔다.
김씨는 말끔한 신사차림으로 이미 나와 김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때로는 2~3명을 한꺼번에 인솔해 가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
3시간만에 육군훈련소가 있는 논산연무대에 도착했다.
여기서 김씨는 김양을 정(鄭)영감(70세가량)에게 넘겼다.
정영감은 이렇게 끌려온 처녀들의 미모에 따라 한사람에 1만2천원에서 1만5천원을 김씨에게 지불하던 인신매매의 한패.
정영감은 불량배들을 시켜 처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엄중 감시한다.
설령 함정에 걸린 아가씨들이 빠져나온다 해도 몸값 1만5천원은 어김없이 물어놓아야 하도록 되어 있다.
구직처녀들에게 이만한 돈이 있을리 없다.
이렇게 며칠 갇혀 있다 보면 웬만한 아가씨들은 자포자기. 정영감이 시키는대로 순순히 창녀나 작부로 팔려 가게 마련. 몸값은 껑충 뛰어 2만원에서 3만원.
김양은 미처 팔려가기 전에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결사적인 탈주에 성공했던 것.
한편 정영감에게 처녀들을 팔아 넘긴 김씨는 몸값중 3~4천원을 전화로 지령하던 박양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챙겼다.
한 사람에 보통 8천원씩을 번 셈이다. 양양은 여관에서 묵고 자며 잔돈푼 밖에 얻어 쓰지 못한 듯.
이들 3인의 관계도 묘하게 얽힌 것.
김씨와 양양은 박양이 언제부터 이런 인신매매를 시작했는지 모른다고 경찰에서 주장. 김씨는 지난해 12월중순 상경, 박양이 낸 광고를 보고 연락, 동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양양도 거의 같은 때「레지」를 해 보겠다고 전화를 걸었다가 인연을 맺게 됐다는 것.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3년 전부터 술집을 경영, 보름이 멀다 하고 말없이 도망쳐 버리는 작부를 구하기 위해 이리 저리 수소문하다가 연무대의 정영감을 알게 됐다는 김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경기가 좋지 않아 장사를 집어치우고 궁리 끝에 서울로 올라왔다는 것.
자칫 잘못해서 빠져들면 나오기는 좀처럼 어려워
그는 지난 12월23일에 2명, 25일에 2명, 30일에 2명, 1월2일에 3명, 3일에 1명 등 도합 10명을 정영감에게 넘겨 줬다고 자백했다.
양양은 고향인 전남 나주에서 3년전에 상경, 공장·이발소종업원·식모살이 등으로 전전해 오다 박양의 꾐에 빠졌다며『처녀들을 여관으로 데려오는 심부름만 했지 사실이 이런줄은 새까맣게 몰랐다』고 울먹였다.
김씨와 양양은 도망쳐온 김양의 안내로 K여관을 덮친 경찰에 잡혔으나 박양은 경찰이 이들을 앞세우고 광화문의 5층 사무실을 급습했을 때는 벌써 어떻게 연락을 받았는지 행방을 감추고 없었다.
<휴(烋)>
[선데이서울 72년 1월 16일호 제5권 3호 통권 제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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