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복원에 체육유산 희생당해”
수정 2017-09-20 00:11
입력 2017-09-19 22:24
태릉선수촌 철거에 체육회 분통
체육계는 반세기에 걸쳐 한국 엘리트 체육의 요람 역할을 한 태릉선수촌의 근현대사적 가치를 고려해 핵심 8개 시설만이라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면서 체육 유산을 아쉽게 떠나보냈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얘기다. 덧붙여 태릉국제스케이팅장은 400m 실내 트랙을 갖춘 수도권 내 유일한 경기장이기 때문에 없애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승곤 대한체육회 정책연구센터장은 19일 “강릉에 새로 건립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의 경우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활용 방안이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수도권 선수들의 접근성을 감안할 때 태릉빙상장을 남겨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왕릉 능역에 근대문화재가 공존하는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제20대 경종의 무덤인 서울 성북구 석관동 의릉에는 옛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강당이 남아 있다. 2004년 9월 등록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1972년 이후락 당시 중정부장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역사적인 장소라는 점을 인정받았다. 실험정신이 높았던 나상진에 의해 설계된 건물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체육계는 태릉선수촌이 옛 중앙정보부 강당의 선례를 따르길 기대한다.
안창모(건축학과) 경기대 교수는 “조선왕릉의 유네스코 등재 땐 태릉선수촌이 가진 근대 문화재로서의 가치에 대해 인식이 충분하지 않았다. 추후 공론화 과정에서 이러한 공감대가 생겼다”며 “국내 문화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게 어렵지 (일단 문화재로 지정되면) 유네스코 쪽 설득은 더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계는 유네스코와의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태릉선수촌은 과거 강릉의 제향을 준비하던 재실터에 위치해 제대로 복원하려면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문정왕후의 무덤인 태릉과 그의 아들 명종이 묻힌 강릉은 한 권역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태릉선수촌이 그 한가운데 자리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옛 중정 강당과 관련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현지실사 때 이미 유네스코 측에 설명했다. 중정 본관은 2008년 철거됐고 강당과 회의실 2동만 등록문화재로 남긴 것이라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며 “(강당 등이) 의릉 능역에 미치는 영향도 적다”고 설명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2017-09-2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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