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희망 밑거름’ 될까 (상)] 성프란시스大 수료생 작품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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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수정 2007-03-14 00:00
입력 2007-03-14 00:00
인문학과 노숙인, 인문학과 성매매 여성, 인문학과 재소자….

균형이 없어 보이는 이 조합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각자의 판단에 따라 기준은 다르겠지만, 자신에 대한 인정과 성찰, 사회에 대한 긍정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 인문학의 정신이라면 1·2기 성프란시스대학 수료생들의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숙을 하며 내일이 없는 삶을 사는 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마주 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나의 상자는 얼마나 크고 높고 두꺼운 것일까? 나의 그림 속에는 창문이 있고 문이 있다. 하지만 항상 그 문들은 닫혀 있고 빛이 새어나오지 않는다. 상자와 그림 속의 집 모두 닫혀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한다. 웃기지 않는가? 상자의 존재를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사용해야 하는 정작 주인공인 나는 그림에도 상자 안이든 밖이든 존재하지 않는다.”-C씨의 ‘나의 상자 안과 밖’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신발 밑에 낙엽 밟히는 소리/그 소리가 천둥소리/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고요하게 사라진다.”-H씨의 ‘소리’

현재를 살폈기에 문제의 발단이 된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된다. 비로소 원망의 시선 말고 다른 방식으로도 과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그러셨던가요.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도 기쁘게 하는 것도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너를 잘 아는 사람이 아픔을 주고 힘들게 하는 거라고…결국은 저는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주의자로 몰락해 집에서 왕따가 되어 버렸죠.”-K(여)씨의 ‘아버지 전상서’

어렵게 마주한 자신이기에 희망을 노래하는 목소리는 조심스럽기만 하다.

“간다/기어서 간다/보이지 않는다/동백꽃 끌어안고 달팽이는/붉은 피 봄을 만나러 간다”-A씨의 ‘희망’

1년 동안 인문학 수업을 받은 이들은 더 이상 희망을 피하지 않는다.

“생각만 하여도 설렌다/기대도 크다 두렵기도 하다/다들 하는 짓인데 짐짓 강한 척해 본다/무거운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홀가분하기도 하다. 돈키호테가 부럽다”-L씨의 ‘취직’

자신을 마주 본 이들은 사회로 눈을 돌린다. 자기에게 향한 사랑이 확대되는 과정이다. 처지가 비슷한 ‘독거 초등학생에게 띄우는 글’에서 Y씨는 격렬하지만 농도가 짙고 성숙한 사랑을 표현한다.

“너에게 독거라는 엄청난 삶의 짐을 지워준/내가, 우리가, 사회가 원망스럽다…우리는 더불어 살 것이다…단 네가 해야 할 것이 있다/하늘을 보아야 할 것이며/꿈을 꾸어야 할 것이며/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며/사랑을 가져야 할 것이며, 천사이어야 할 것이다./아니다. 내가 잘못했다. 모든 걸 취소한다./하지 말라!절대 하지 말라!/그냥 너의 친구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뛰어놀고, 웃고/잠자고 하면 되는 것이다./너는 예전부터 천사였으니까!”

홍희경 김민희기자 saloo@seoul.co.kr
2007-03-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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