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해질무렵은 하루 성찰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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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5-11-11 13:35
입력 2015-11-11 09:15

최근 장편 ‘해질 무렵’ 출간’ 여울물 소리’이후 3년만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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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사진, 72)은 이름 석 자만으로 고개가 숙여지는 한국 문단의 거장이다.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경복고등학교 재학 당시 단편 ‘입석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황석영이 최근 소설 ‘해질 무렵’을 출간했다. 그가 ‘만년문학의 시작’이라고 한 ‘여울물 소리’ 이후 3년 만이다. 소설 출간에 맞춰 황석영을 경기 일산 자택 근처에서 만났다. ‘해질 무렵’은 황석영 장편 소설 중 가장 짧은 560매 경장편으로 완성됐다.

“요즘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 경장편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짧게 기획했죠. 현대인들은 긴 소설을 느긋하게 못 읽어요. 서사를 해체하고 압축하면서 100여장을 과감하게 쳐냈어요. 독자들이 단숨에 책을 읽으며 인생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했죠.”

소설은 성공한 60대 건축가 박민우와 아르바이트로 삶을 영위하는 20대 정우희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의 이야기는 당시 사회상과 궤를 같이하며 묘하게 맞물려간다. “이 같은 동시 진행은 과거와 현재가 한몸이라는 걸 보여줘요. 이전 세대의 업보가 지금 젊은 세대에게 현실적 어려움으로 다가와 있는 거죠.”

산동네 달골의 어묵장사 아들인 박민우는 일류대학을 나와 외교관의 딸과 결혼한다. 이후 건축가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인생의 해질 무렵에서 문득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그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 그의 첫사랑 차순아다. “어떻게 보면 제가 박민우에 투영된 거죠. 다 회한이 있어요. 남자들에게 첫사랑의 기억은 중요하니까. 우리 집 사람이 어묵공장 집 딸이었거든. 그러니 제 체험도 녹아든 거죠. (웃음)”

정우희는 연극 연출이라는 꿈을 좇으며 간신히 삶을 버텨내고 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젊은이의 초상이다. 황석영은 소설에서 고단한 20대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제가 자주 가는 커피숍이 있는데 거기서 일하는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 친구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더라고요. 술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도 취합하고, 여러 삶의 떠도는 일화들을 집합했어요.”

소설에서 중요한 상징 중 하나가 바로 강아지풀이다. 강아지풀은 박민우의 첫사랑인 차순아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오갈 데 없이 방황하는 우리 이웃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강아지풀은 과거와 현재 세대를 대변하는 두 주인공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어느 날 저희 집 근처에 누군가 화분을 버렸더라고요. 화분을 보니 가운데에 어떤 식물이 말라죽어 있고 그 주위에 강아지풀이 나 있는 거예요. 강아지풀이 어디서 날라와 거기서 자란 거죠. 그걸 보고 언젠가 제 소설에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강아지풀은 두 주인공 모두에게 차순아의 삶을 떠올리게 하죠. 작가는 그냥 자연스럽게 보여주기만 해요. 빈민가가 개발돼도 거기에 살던 사람들은 사라져 버리지 않아요. 어디론가 밀려가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죠. 결국 강아지풀을 죽이는 것이나 재개발하는 행위나 별 차이가 없어요. 강아지풀은 우리 안의 회한이 된 부분이에요.”

소설은 짧지만 박민우와 정우희의 내레이션 위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황석영은 “서사가 풍부해져야 깊이가 만들어진다”며 “결국 그림에 덧칠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서사를 소홀히 하면 안 돼요. 서사가 있어야 문장과 표현이 따라오죠. ‘종이책은 끝났다’, ‘소설은 끝났다’라고 하는데 서사는 사라지지 않아요. 우리의 삶과 서사는 뗄 수 없거든요. 사람은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서사적인 존재에요. 꿈은 현실에서 겪는 것을 재편성하는 거니까.”

제목을 ‘해질 무렵’으로 지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해질 무렵이라는 게 낮과 밤이 교차하는 이행기에요. 땅거미가 남아있는 중간의 시간이죠. 그런 시간에 지난 하루에 대한 성찰이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해질 무렵이 전체 소설 분위기에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황석영은 오는 18일 가수 전인권과 함께 ‘해질 무렵’ 북 콘서트도 연다. “소설을 3분의 2 정도 쓰고서 시내 카페에 들린 적이 있어요. 거기서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가 나오는데 머리를 탁 때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쩌면 내가 쓰는 소설과 이렇게 맞아떨어질까’하고 말이죠. 너무 묘하게 일치해서 재미있기도 했어요. 집에 가서 집사람한테 들려주니 소설이 영화 되면 주제곡으로 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가사를 들으면 제가 왜 그런지 이해가 될 겁니다.”

3년 만에 소설을 낸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제 자전소설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를 집필할 예정입니다. 내년쯤에는 나오겠죠. 한동안 그 소설을 잊고 있었는데 제가 제 자전소설을 너무 아무렇게나 취급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 써서 하나의 문학작품을 만들어야죠. (웃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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