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양자 승계

홍희경 기자
수정 2026-10-22 02:00
입력 2026-10-22 00:47
혈연보다 신뢰였다. 세라젬 창업주 이환성 회장이 2003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전문경영인 이경수 대표를 성인 양자로 입양하고 지분 10%를 넘겼다. 보기 드문 승계 방식이다.
국내 창업주들은 자녀가 가업을 잇지 않거나 상속세 부담이 크면 회사 매각을 택하고는 했다. 락앤락은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인수됐고, 청호나이스는 창업주 별세 뒤 칼라일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소유와 경영을 나누기도 했다. 한샘의 최양하 전 회장은 평사원 출신으로 25년간 경영을 이끌었지만, 창업주 일가의 지분은 2021년 매각됐다.
세라젬의 승계를 보며 일본을 떠올린 이들도 많다. 100년 넘는 노포가 많은 비결은 입양을 통해서라도 가업을 잇는 특유의 경영 문화. 물론 딸과 결혼한 사위를 호적에 올린 사례가 대부분이다. 일본어로 ‘무코요시’(婿養子). 스즈키자동차의 2~4대 사장이 모두 무코요시였다. 혼인 없이 사업 관계만으로 양자를 들이는 경우는 일본에서도 흔치 않다.
캐나다 앨버타대 등 공동 연구진이 1949~1970년 일본에 상장된 비금융기업 1367곳을 2000년까지 추적조사한 연구가 있다. 창업자, 친자, 양자,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기업으로 나누고 규모, 업력, 업종 등을 통제해 수익성을 비교했더니 양자가 이끈 기업이 친자 기업보다 성과가 좋았다. 이 연구 속 양자들도 2명을 빼면 모두 사위였다.
양자 승계가 대세가 되긴 어렵겠으나, 자녀 승계도 매각도 아닌 ‘제3의 승계’를 고민하는 창업주가 늘 수 있겠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빨라 ‘승계 절벽’도 일찍이 경험한 일본에선 새로운 실험이 잇따르고 있다. 경영자를 꿈꾸는 개인이 투자금을 모아 후계자 없는 회사를 인수해 직접 경영하는 ‘서치펀드’가 가동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경영자가 60세 이상인 중소기업 가운데 28.6%가 후계자가 없다. 이들에게 세라젬의 선택은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홍희경 논설위원
2026-10-2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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