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광장] 이제는 ‘모두의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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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10-20 00:40
입력 2026-10-20 00:01
서울 관악구 난곡로를 걷다 보면 작은 정원을 잇달아 만난다. 길을 따라 열다섯 곳에 들어선 ‘사계절 생생정원’이다. 장바구니를 든 어르신이 꽃 앞에 멈춰 서서 빙그레 웃고, 등굣길 아이들은 지난주보다 자란 풀포기를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사는 곳 가까이에서 날마다 만나는 정원이다. 관악은 이런 정원을 길가뿐 아니라 동네 구석구석 자투리땅에도 만들고 있다. 민선 9기 핵심 전략으로 삼은 ‘힐링정원도시’의 출발점이다.

지금 전국은 정원 열풍이다. 정원도시를 내건 지방정부가 서른 곳을 넘고, 서울에서는 지난 2년간 정원 1000여 곳이 새로 생기거나 단장됐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속도에 비해 생각은 깊지 못했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크게 만들었는지는 말하면서 그 정원을 누가 누리고 누가 가꾸는지는 묻지 않았다. 도로나 건물은 준공하는 날이 가장 화려하지만 갈수록 낡아 간다. 살아 있는 유기체인 정원은 거꾸로다. 준공하는 날이 가장 볼품없지만 정성껏 가꿀수록 아름다워진다. 이제 정원 정책에도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나는 그 길을 ‘모두의 정원’에서 찾는다.

‘모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누구나 가까이’이다. 멀리 있는 큰 정원 하나보다 집 앞의 작은 정원 여럿이 일상을 바꾼다. 1967년 ‘정원도시’를 선언한 싱가포르는 ‘정원 속 도시’를 거쳐 이제 ‘자연 속 도시’를 말하며, 2030년까지 모든 가구가 걸어서 10분 안에 공원에 닿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하나는 ‘누구나 즐기는’이다. 정원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멀리 나서기 어려운 사람이다. 시간이 넉넉하고 몸이 건강한 이들만의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관악이 낙성꽃뜰정원에 휠체어와 유모차가 다니는 무장애 동선을 내고 그늘과 쉼터를 넉넉히 둔 까닭이다.

정원은 이어져야 한다. 정원과 정원이 걷기 좋은 길로 이어져 녹지축을 이룰 때 주민은 집을 나서 정원에서 정원으로 걸을 수 있다. 싱가포르가 공원과 공원을 잇는 길을 500㎞까지 늘리는 이유다. 관악은 관악산 자락의 공원 24곳을 녹지축으로 잇는 22.88㎞ ‘하늘숲길’을 순차적으로 조성한다. 이 축이 가로 정원과 골목 정원을 따라 생활권으로 뻗으면 관악산은 주말에 오르는 산에서 날마다 걷는 산이 된다.

정원은 만드는 일보다 가꾸는 일이 더 어렵다. 주민 뜻을 묻지 않고 만든 정원은 꼭 필요한 자리에, 원하는 모습으로 들어섰는지 장담할 수 없다. 늘어나는 정원을 행정의 인력과 예산만으로 관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싱가포르에는 주민과 학교, 단체가 손수 가꾸는 공동체 정원이 2000곳을 넘는다. 관악에는 주민 정원사 ‘힐링 가드너’가 있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수료생들은 생생정원을 정기적으로 가꾼다. 내년에는 관악의 모든 정원 관리에 주민이 주체로 참여하는 ‘관악 그린파트너스’(가칭)를 본격 운영한다.

서울시도 자치구도 살림이 넉넉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럴수록 주민과 함께 만들고 함께 가꾸는 정원에 투자해야 한다. 주민의 손이 닿는 정원은 쉽게 방치되지 않는다. 자치구가 정원을 만드는 일부터 가꾸는 일까지 주민과 함께 앞장설 수 있도록 서울시가 정원 예산을 확충해 주기 바란다. 전국의 지방정부와 정책 담당자들께도 권한다. 몇 곳을 만들었는지 세기 전에, 그 정원을 누가 누리고 누가 가꾸는지 먼저 물었으면 한다. 도시 안에 정원을 두는 데서 나아가 정원 속에 도시가 놓이는 내일을 관악이 먼저 열겠다.



박준희 서울 관악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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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 서울 관악구청장
박준희 서울 관악구청장
2026-10-2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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