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창문 없는 저 호텔 누가 만들었나

김동현 기자
수정 2026-10-19 02:42
입력 2026-10-19 00:56
외국인 관광객 3000만 시대 눈앞
모순된 규제에 흉물스런 옹벽 호텔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은 바꿔야
이제는 일상이 됐다.서울 광화문과 시청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식당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만나는 일 말이다. 단골 순댓국집에서 메뉴판을 정독하고 있는 노랑머리 부부와 삼겹살집에서 서툰 젓가락질을 하는 어린이들을 보는 것이 이제 낯설지 않다. K팝으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파생된 효과다. ‘그게 되겠어?’ 했던 ‘외국인 관광객 3000만 시대’가 이제 허황되게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바라보니 서울의 거리가 좀 달리 보인다. ‘국뽕’이라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울은 세계 어느 도시 못지않게 예쁘게 바뀌고 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보면 푸른 하늘과 북악산을 배경으로 경복궁이 멋지게 자리잡고 있고, 육조 거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현대 건축물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세계 최대 가로분리대’라는 비판을 받으며 탄생한 광화문광장도 슬금슬금 자리를 넓혀 이제 시민들이 즐기는 공간이 됐다. 가히 ‘예쁜 서울’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여전히 거슬리는 것이 보인다. 길을 가다 가끔 보이는 ‘창문 없는 호텔’이다. “고시원도 아니고 창문 없는 호텔이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골목골목 들어선 소형 관광호텔 가운데 적지 않은 곳이 한쪽 면, 혹은 그 이상이 창문 없는 ‘옹벽’으로 지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처음에는 돈벌이에 급급한 사람들이 규정을 무시하고 지은 건물인 줄 알았다. 아무래도 창문을 내고 뭘 하는 것보다 옹벽으로 벽면을 처리하면 건축비가 덜 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쁜”이라는 생각으로 좀더 알아보니 아니었다. 규정을 어기고 지은 건물이 아니라, 규정을 지키기 위해 ‘옹벽’으로 둘러싼 건물이 된 것이었다. 규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지킨 것이 ‘흉물’을 만들었다니….
사정은 이렇다. 정부는 숙박시설 공급 활성화를 위해 일반주거지역에 관광호텔 건축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법상 일반주거지에서 관광호텔을 지으면 주거지 방향으로 창문이나 문을 내는 것이 사실상 막혀 있다. 주거지역 주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맞다. 아무리 관광객 3000만명이 좋아도 시민 생활에 피해가 간다면 규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같은 땅에 오피스텔을 지으면 창이나 문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의문이 든다. 오피스텔 창문은 거주민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고, 호텔 창문은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것인가? 뭔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논리적 모순이라도 시민 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괜찮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옹벽으로 둘러싸인 호텔이 들어선 주택가 주민들은 감옥 담벼락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벽면을 마주하고 살아야 한다.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작동해야 할 행정이 도시 미관을 해치고 그 피해를 시민들이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지어져도 장사는 잘될 것이다. 지난 7월 서울 호텔의 객실 가동률은 평균 85%였다. 3~4성급 호텔의 경우 88~90%에 달했다. 방이 없어서 손님을 못 받는 상황이니 창문 없는 호텔방도 팔려나갈 것이다.
그냥 놔두어도 장사가 잘되는데 굳이 바꿔야 할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 그런 방에 묵는다면 다시 한국에 오고 싶을까. 그런 호텔이 골목골목에 흉물처럼 자리잡은 한국에 다시 오고 싶을까. 매일 아침 집 앞에서 ‘옹벽’을 마주하는 시민들은 더 행복한가.
외국인 관광객 3000만명을 위해 시민들의 사생활을 희생해선 안 된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이 도심 속 ‘흉물’을 양산하고 있다면 바꿔야 하지 않을까. 무엇인가를 더 잘하는 것보다 이상한 것을 고치는 것이 먼저다.
김동현 사회2부 차장(부장급)
2026-10-19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THE NEXT : AI 운명 알고리즘 지금, 당신의 운명을 확인하세요 [운세 확인하기]](https://imgmo.seoul.co.kr/img/n24/banner/ban_ai_fortune_v2.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