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은행나무 품에서… 우리 결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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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훈 기자
수정 2026-10-04 23:51
입력 2026-10-04 23:51

유산청, 고궁박물관 예식공간 마련
국제결혼 등 28쌍 지원… 경쟁률 10대1
큰 호응에 내년 대상 80쌍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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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출신 콘텐츠 크리에이터 마이(오른쪽·27)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은행나무 쉼터에서 치뤄진 ‘고결’ 야외 결혼식에서 신랑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에스토니아 출신 콘텐츠 크리에이터 마이(오른쪽·27)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은행나무 쉼터에서 치뤄진 ‘고결’ 야외 결혼식에서 신랑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노란 가을빛으로 물들기 전, 아직 초록빛을 띤 경복궁 은행나무 아래에서 에스토니아 출신 콘텐츠 크리에이터 마이(27)가 특별한 혼인식을 열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야외 결혼식 지원 사업 ‘고궁박물관에서 결혼해’(고결)의 첫 신부가 된 마이는 ‘김치귀신 마이’라는 이름의 구독자 22만명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복과 한국 문화를 소개해 왔다. 그는 처음 경복궁을 찾은 지 꼭 10년이 되는 지난 2일 열린 결혼식에서 631년 역사의 경복궁 담장 안에서 새로운 가족이 탄생했음을 알렸다.

마이는 이날 직접 쓴 혼인서약을 통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항상 당신 곁에서 손을 잡고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예식 뒤 서울신문에 “그동안 이방인으로서 한국 문화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진짜 가족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는 제 가족을 소개하는 마음으로 한국 문화를 더 아끼겠다”고 했다.

에스토니아에서 온 하객 일부는 한복을 입고 자리를 함께했다. 한복을 차려입은 양가 어머니는 신랑·신부보다 먼저 단상에 올라 난 화분에 함께 물을 줬다. 7000㎞ 떨어진 한국과 에스토니아의 두 가족이 한 뿌리를 맺는다는 뜻을 담은 ‘플랜팅 세리머니’였다. 이 난은 이재명 대통령의 배우자 김혜경 여사가 예식 약 2시간 전 마이 부부를 만나 새 출발을 축하하며 건넨 선물이다. 김 여사는 “아름다운 문화유산 공간에서 두 분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 축하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덕담을 건넸다.

마이의 조카 앨리엇(8)은 조선 임금의 곤룡포를 입고 결혼반지가 담긴 꽃송이를 들고 예비부부 앞에 서는 화동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앨리엇이 건넨 반지를 나눠 끼우며 하객들 앞에서 미소지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사연을 가진 예비부부들이 경복궁에서 식을 예정했다. 전통주 소믈리에 유민혁(33)씨와 카페를 운영하는 이유라(29)씨는 교제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공고를 보고 “여기에 뽑히면 결혼하자”고 약속했다. 이후 받은 선정 고지 전화는 두 사람이 결혼을 결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유씨는 “결혼식을 허례허식으로 생각해 생략할까도 했지만, 경복궁에서 하는 예식이라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예식장은 대관료만 수천만원이 들기도 하는데, 신혼여행을 포함한 전체 비용을 약 4000만원으로 예상한다”며 “경제적으로도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고 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생활하는 구성준(34)씨와 최진(33)씨는 지난해 약혼한 날로부터 꼭 1년 뒤인 오는 5일 경복궁 인근에서 예식을 올린다. 최씨는 “한국의 역사가 담긴 곳에서 결혼하고 싶었다”며 “나중에 아이와 한국에 와서 ‘엄마 아빠가 여기서 결혼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선정된 30대 프리랜서 최모씨에게 고결은 미뤄 둔 결혼을 현실로 옮길 수 있게 한 계기였다. 그는 뇌종양 진단 뒤 정규직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게 됐다. 최씨는 “경제적 사정과 투병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려 했는데 지원 대상자로 선정돼 큰 용기를 얻었다”며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도 혜택을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결은 국가유산청이 국립고궁박물관 은행나무 쉼터와 별관을 소규모 예식 공간으로 열어, 국가유산을 시민의 일상으로 끌어들이고 청년층의 결혼 비용 부담을 덜자는 취지로 올해 처음 시작됐다. 박물관은 지난 2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주말과 공휴일마다 하루 두 차례씩 모두 28쌍의 예식을 지원한다.

올해 고결에는 293쌍이 지원해 경쟁률이 약 10대1이나 됐다. 신청자가 몰리면서 대상 커플도 당초 16쌍에서 12쌍을 늘렸다. 최종 선정 커플 가운데 8쌍은 에스토니아·베트남·프랑스·카자흐스탄·영국·방글라데시·스페인 등과 연결된 국제 커플이다.

일반 선정 커플에는 예식 관련 비용 100만원을, 사회적 배려 대상 2쌍에는 최대 650만원을 지원한다. 박물관은 올해 호응을 바탕으로 내년 봄과 가을에는 80쌍을 선정할 계획이다.

김임훈 기자
세줄 요약
  • 경복궁 은행나무 아래 첫 고궁 결혼식 진행
  • 에스토니아 출신 크리에이터 마이 첫 신부
  • 청년 예식 지원 사업, 293쌍 몰려 호응
2026-10-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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