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단순함을, AI는 복잡함을 선호한다…체스 2400판이 밝힌 차이

유용하 기자
수정 2026-09-08 14:25
입력 2026-09-08 14:25
세줄 요약
- 인간은 단순화, AI는 복잡성 유지 경향
- 체스 2400판 분석으로 전략 차이 확인
- 긴장 정점은 30~60반수 구간에서 형성
픽사베이 제공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이탈리아 파르마대 수학·물리·컴퓨터과학과, 오스트리아 복잡계 과학 허브 공동 연구팀은 사람끼리 둔 대국과 AI끼리 둔 대국 총 2400판의 체스 게임을 한 수씩 분석한 결과 인간은 판이 복잡하게 얽히면 상황을 정리하려고 하지만 AI는 얽힌 상태를 훨씬 오래 그대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8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물리학회에서 발행하는 ‘APS 오픈 사이언스’에 실렸다.
연구팀은 최정상 그랜드마스터 대국 1200판과 세계 최강 AI 엔진끼리 겨루는 공식 대회인 TCEC에서 스톡피시와 릴라 체스 제로가 맞붙은 2019~2024년 대국 1200판을 분석했다. 사람과 AI의 대국이 아니라 각각의 대국에서 나타나는 패턴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전략적 긴장’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체스에서 긴장은 서로 잡을 수도, 잡힐 수도 있는 기물이 맞물려 있는데도 교환을 실행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기물은 킹, 퀸, 룩, 비숍, 나이트, 폰 등 체스 게임에서 사용되는 말을 통칭하는 단어다. 긴장 상태에서 교환을 실행하면 판은 단순해지지만 버티면 양쪽 모두 ‘지금 잡게 되면 다음 수는 어떻게 될까’를 계속 계산하고 고민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연구팀은 잠재된 복잡함을 숫자로 바꾸기 위해 선수들이 한 번 둘 때(반수)마다 체스판을 관계망으로 변환했다. 기물과 서로 노리고 있는 빈 칸을 점으로 놓고 곧바로 잡을 수 있는 관계(공격), 잡히면 되잡을 수 있는 관계(수비), 상대가 들어오면 잡을 수 있는 빈 칸(통제) 등 세 종류로 구분했다. 이렇게 만든 그물망이 얼마나 촘촘한지를 ‘최대 고유값’으로 요약했다. 체스판은 8×8, 64칸이기 때문에 관계망의 점은 최대 64개다. 값이 클수록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의 가짓수가 많고 동시에 작은 실수 하나가 판 전체로 번질 위험도 크다.
긴장 곡선의 모양은 양쪽이 비슷했다. 시작할 때는 기물이 멀리 떨어져 있어 낮다가 서로 다가서며 치솟고 30~60반수 구간에서 정점을 찍은 뒤 내려왔다. 정점 자체는 오히려 사람이 더 높았다. 그랜드마스터들이 40반수 무렵까지 따라가는 오프닝 정석이 원래 기물 충돌이 빽빽한 국면이기 때문이다. 차이는 정석 구간이 끝난 뒤부터 나타났다. 정석이 끝나고 스스로 계산해야 하는 구간에 들어서면 사람은 기물을 교환하며 판을 빠르게 정리했지만 AI는 얽혀 있는 국면을 훨씬 오래 유지했다. AI 대국은 판에 남은 기물 수도 더 많았고 관계망의 연결선과 고리도 더 촘촘한 것으로 확인됐다.
긴장을 견디는 힘은 실력과 계산 자원에 비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의 경우 플레이어의 능력을 수치로 계산한 엘로 점수가 높을수록 누적 긴장이 거의 직선으로 늘었고 같은 실력이라도 생각할 시간이 긴 클래식 대국이 속기나 초속기 대국보다 높게 나왔다. AI도 몇 수 앞까지 내다보는 탐색 깊이가 늘어날수록 긴장이 커졌다.
사람의 대국은 공격 관계가 수비 관계보다 많은 쪽으로 치우쳤고 기물마다 짊어진 부담의 편차도 컸다. 반면 AI는 공격과 수비가 고르게 분포했고 기물별 역할도 비교적 균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물 하나당 긴장은 사람 쪽이 내내 높았다. 즉 사람은 기물을 자주 교환해 숫자를 줄이는 대신 남은 기물에 더 무거운 짐을 지우는 방식으로 두고 있었다는 말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승부가 갈리는 시점은 대체로 30반수 전후로 긴장이 정점에 이르기 전으로 나타났다. 인간 게이머가 판을 단순화하는 행위는 승리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뜻이다. 이미 유리해진 쪽이 상대의 반격 여지를 줄이려 기물을 맞바꾸는 것이지 맞바꿈으로써 이기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40반수 시점에서 폰 1개 이상 앞서 있을 때 최종 승리 확률은 사람 대국이 약 71%, AI 대국은 약 59%였다.
사람이 체스판에서 단순화하려는 성향은 적응적 태도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복잡한 판을 계속 정확히 계산하려면 막대한 인지 자원이 드는데 작업기억과 주의력에 한계가 있는 사람은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판을 줄여 정확도를 지키는 쪽을 택한다는 것이다. 체스 한 판을 지는 단기 손해보다 에너지를 아끼고 범용적 지능을 유지하는 장기 이득이 크다는 진화적 맞교환이라는 뜻이다.
연구를 이끈 에드워드 리 서울대 교수는 “체스는 지능 시스템이 눈앞의 기회와 장기적 결과를 저울질하는 방식을 통제된 환경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연구 수단”이라며 “AI가 복잡성을 증폭시킨다면 협상이나 경제 경쟁, 갈등 같은 다른 전략적 상황에서는 어떨지 추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계산 능력이 커진 AI가 긴장을 오래 유지하는 쪽으로 움직인다면 더 복잡한 대치가 가능해지지만 오판의 대가도 커질 수 있다. 현실의 협상과 분쟁은 체스와 달리 정보가 불완전하고 규칙도 고정돼 있지 않아 직접 비교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내안의 AI 본성 분석 :
UNMASK ]
기사 읽는 습관에 숨겨진 당신의 MBTI는?
Q.
기사를 다 읽으셨나요? AI 퀴즈로 핵심 점검!
체스에서 판이 복잡해질 때 인간과 AI의 전략 차이는?

![THE NEXT : AI 운명 알고리즘 지금, 당신의 운명을 확인하세요 [운세 확인하기]](https://imgmo.seoul.co.kr/img/n24/banner/ban_ai_fortune_v2.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