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박 전시한 애국지사 ‘일반시국은’, 알고보니 동명이인 친일파 글씨였다
김임훈 기자
수정 2026-09-08 00:44
입력 2026-09-08 00:03
유묵 검증 절차 미흡… 유족 또 울려
박원근 지사, 지하조직서 항일운동친일 박중양, 日서 박원근으로 생활
박물관, 작품 철수하고 사과문 올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이 애국지사의 글씨라며 전시했던 유묵이 있었다. 알고 보니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작품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7월 개막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 출품했던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 유묵을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작품으로 결론 냈다고 7일 밝혔다. ‘일반시국은’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영규 대사가 승병을 모으며 했다고 전해지는 말로, ‘한 그릇의 밥도 다 나라의 은혜’라는 뜻이다.
박물관은 특별전을 열 당시만 해도 이 작품을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소개했다. 충북 보은군 출신인 박원근 지사는 일제강점기 비밀결사와 지하조직에서 항일운동을 벌였다.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고 1950년 세상을 떠났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박중양은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와 황해도지사·충북도지사 등을 지내고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까지 역임했다. 해방 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붙잡혀 재판을 받기도 했다.
작품은 지난달 7일 박원근 지사의 아들 박용현씨가 전시장을 찾으면서 주목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친필 유묵을 처음 마주한 것으로 알고 작품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작품에 적힌 ‘박원근’이 박중양이 과거 사용한 이름일 수 있다는 외부 제보가 접수됐다. 이에 박물관은 지난달 10일 작품을 철수했고, 이틀 뒤 유홍준 관장은 박물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려 전시품 검증 절차가 미흡했다고 밝혔다.
박물관이 서예·근현대사·고문헌·보존과학 분야 전문가 7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작품과 박중양의 필적을 대조한 결과 획 처리 방식에서 유사성이 드러났다. 문헌 조사에서는 박중양이 1896년부터 1903년까지 일본에 유학했으며, 이 기간 ‘박원근’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각지를 돌며 휘호를 팔아 경비를 마련했다는 기록도 확인됐다.
박물관은 “박원근 지사 유족께 조사 경위와 결과를 설명하고 거듭 사과드릴 예정”이라며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전시품과 전시 내용의 사전 검증을 강화하고, 근현대사 분야 내외부 전문가 자문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김임훈 기자
세줄 요약
- 애국지사 글씨로 전시한 유묵, 친일파 작품으로 판정
- 박중양의 박원근 명의 사용 기록과 필적 유사성 확인
- 박물관 작품 철수, 사과문 게시, 검증 강화 약속
2026-09-0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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