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떠나도 역사 남는다”… 제주 섯알오름 합동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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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수정 2026-08-20 00:48
입력 2026-08-20 00:48

132위 유해 섞인 백조일손묘역
76년 전 집단학살 희생자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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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곤(왼쪽 두 번째) 제주지사가 19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백조일손 묘역에서 ‘제76주기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합동위령제’를 지낸 뒤 유족회와 함께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제주도 제공
위성곤(왼쪽 두 번째) 제주지사가 19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백조일손 묘역에서 ‘제76주기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합동위령제’를 지낸 뒤 유족회와 함께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제주도 제공


“1950년 칠월칠석 새벽, 모슬포 절간고구마 창고의 닫힌 문 너머로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끌려가던 그 길에 덩그러니 남겨진 검정 고무신 한 짝은 오늘까지도 우리의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임문철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 19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백조일손(百祖一孫) 묘역에서 열린 제76주기 예비검속 섯알오름 희생자 영령 합동위령제에서 한 추도사다. 임 이사장은 “한날한시에 희생돼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채 뼈마저 엉켜, 서로 다른 백 명의 조상의 후손들이 한 자손이 되었다는 이름(백조일손)으로 남은 이 비극은 우리 역사에 가장 깊게 팬 상흔”이라고 말했다.

1950년 6·25전쟁 직후 제주에서는 영문도 모른 채 주민들이 예비검속돼 모슬포·한림의 창고 등에 갇혔다. 한 유족은 창고에 갇힌 부모를 보려다 “너도 죽고 싶으냐”는 말을 들었다. 76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갇힌 주민들은 7~8월 섯알오름으로 끌려가 집단 총살됐다. 1956년에야 유해 149위가 수습됐다. 이 중 17위가 유족에게 인도됐고, 나머지 132위는 유해가 뒤섞인 채 백조일손 묘역에 안장됐다. 2000년대 들어 이뤄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과 희생자 상당수는 제주4·3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위성곤 제주지사와 김성범 국회의원, 유족과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이날 위령제에서 고영우 백조일손유족회장은 “사람이 떠난다고 역사가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우리가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올바르게 전하는 한 백조일손의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는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유족회가 건립한 ‘제주 예비검속 백조일손 역사관’을 올해 증축해 인권과 평화 교육의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위 지사는 “4·3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4년 만에 4·3 희생자 및 유족 추가 신고를 재개할 예정”이라며 “단 한 분의 희생자도 역사 앞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세줄 요약
  •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76주기 위령제 개최
  • 6·25 직후 주민 예비검속·집단총살 비극 재조명
  • 역사관 증축과 4·3 추가 신고 재개 추진
2026-08-2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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