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롭고 우아한 ‘형태미’… 한자의 새로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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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수정 2026-05-08 00:56
입력 2026-05-08 00:09

한자, 문명의 무늬/윤성훈 지음/교유서가/840쪽/4만 8000원

한자 구성 요소 중 ‘모양’에 집중
안진경·손과정 ‘서예’ 예술적 분석
글자 하나 유래와 쓰임새 등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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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정 명문(금문) 탁본 전체 모습. 대우정은 청나라 말에 산시성에서 출토된 서주 시기를 대표하는 거대한 청동 솥으로 안쪽 면에 왕이 우(盂)라는 귀족에게 한 말이 새겨져 있다. 은나라가 망한 이유와 주나라의 통치 방침이 담겼다. 교유서가(중국국가박물관·대만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제공
대우정 명문(금문) 탁본 전체 모습. 대우정은 청나라 말에 산시성에서 출토된 서주 시기를 대표하는 거대한 청동 솥으로 안쪽 면에 왕이 우(盂)라는 귀족에게 한 말이 새겨져 있다. 은나라가 망한 이유와 주나라의 통치 방침이 담겼다.
교유서가(중국국가박물관·대만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제공


봄 춘(春)자의 옛 글자를 보면 원래 초(艸) 아래에 어려울 준(屯)이 있고, 다시 그 아래에 해를 뜻하는 날 일(日)이 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준’이다. 왜 봄에 어려움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을까. 준과 춘은 음도 비슷하지만, 의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목이 막 생겨날 때의 모습을 한 이 글자에는 어려움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한자(漢字)는 어떻게 예술이 되고 역사가 됐을까. 한문 번역가이자 서예사 연구자인 윤성훈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은 한자의 모양에서 형태미를 발견하고 3000년을 이어온 ‘문명의 무늬’를 소개한다. 한자는 모양(形)과 소리(音), 뜻(義) 이 세 요소로 이뤄져 있다. 그동안 한자의 소리, 뜻과 관련된 책은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이 책은 상대적으로 연구가 적었던 한자의 모양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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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정의 ‘서보’의 일부. “섬세하기가 마치 하늘가로 막 솟은 초승달 같고 시원시원하기는 마치 은하수 주위로 벌여 선 뭇별과 같다”와 같은 구절을 통해 글씨의 참된 모습을 형용하고 있다. 교유서가(중국국가박물관·대만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제공
손과정의 ‘서보’의 일부. “섬세하기가 마치 하늘가로 막 솟은 초승달 같고 시원시원하기는 마치 은하수 주위로 벌여 선 뭇별과 같다”와 같은 구절을 통해 글씨의 참된 모습을 형용하고 있다.
교유서가(중국국가박물관·대만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제공


알파벳이나 한글에 비해 한자는 많은 글자를 가지고 있다는 결함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한자가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형태미의 매력을 발견한다. 그는 “글씨들에는 크게는 한 시대의 정신이, 작게는 한 예술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처음엔 이국적이고 신비롭게, 나중엔 웅숭깊고 우아하게 보이는 한자”의 매력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한자 모양에 대한 학문으로는 고문자학과 서예론으로 나뉠 수 있다. 저자는 고문자학의 학문적 성과를 받아들여 한자 초창기의 역사적 배경을 밝히면서도 글자의 형태미를 집중적으로 연마했던 서예라는 미적 성취를 끌어와 함께 설명한다. 이 책은 2013년 저자가 출간한 ‘한자의 모험’의 내용을 두 배 가까이 늘려 출간한 것인데, 뒷부분에 서예사 책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안진경, 손과정 등 다양한 서예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덕분에 독자는 갑골문이나 금문이 쓰인 초창기부터 발전기, 원숙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후기까지 한자의 역사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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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한 자는 작지만, 그 유래와 어떻게 쓰이고 확장됐는지 파생되는 이야기는 깊고도 넓다. 가령 봄 춘에는 술의 뜻도 담겨 있는데, 시간을 견딘 술동이 속에서만 화학 작용으로 봄비 내리는 소리가 나듯 봄도 인고의 계절을 거쳐야만 만날 수 있다는 뜻이 담겼다.

저자는 또 참 진(眞) 자에 담긴 길고 긴 여정을 톺아보며 안진경의 글씨를 분석한다. 그는 “안진경이야말로 역사상 최초로 자기만의 얼굴을 가진 글자를 선보인 서자(書者)”라고 칭송하는데, 표준이 전제된 가운데 이 세계 밖, 즉 지금 여기가 아닌 곳에서 온 요소를 녹여야 강렬한 개성이 탄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자의 모양은 계속 변해왔다. 초서의 탄생은 글씨가 왕의 위업을 기리는 도구에서 벗어나 개인의 예술 작품으로 가능성을 확장한 혁명적 사건이다. 남북조시대를 끝내고 거대 통일제국을 이룬 당나라는 왕희지의 행초서로 대표되는 남조의 붓글씨와 북조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새김 글씨 전통을 종합해 해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저자는 해서 이후 거대 서체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한자의 모양은 개인적, 예술적 창조의 결과물이 됐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한자에 담긴 언어의 역사, 인간 사회의 문화, 문명의 역사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한자의 다채로운 무늬를 만나게 된다.

윤수경 기자
세줄 요약
  • 한자의 모양에 주목한 형태미 탐구
  • 봄 춘자와 참 진자에 담긴 유래와 의미
  • 고문자학과 서예사로 본 문자 예술화
2026-05-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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