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 요약
- 14세 서연, 온라인 성착취 피해 노출
- 친절한 접근 뒤 협박·요구로 변질
- 신상 유포와 두려움 속 신고 지연
이야기의 주인공인 ‘서연’(가명)은 온라인 성착취 피해자의 평균 연령인 중학교 2학년(14세) 여학생의 가장 흔한 이름입니다. 스마트폰을 쥔 모든 아이들이 이 범죄의 타깃이 된다는 현실을 전하려는 의도입니다. 더이상 아이들에게 가해자들의 메시지가 도착하지 않길 바랍니다. 아이들은 고작 열네 살입니다.
또 모르는 아이디였다. “야, 너가 걔라며?”
등교하는 버스 안, 서연(가명·14)은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고 조용히 껐다. 텔레그램에 자신의 이름과 학교, 사진이 올라온 간 뒤로 이런 메시지가 며칠 걸러 한 번씩 온다. 전날 복도를 지나던 남자애 둘도 킥킥대며 수군거렸다. “텔레에 박제된 애잖아. 사진 봐봐. 맞는데?” 서연은 창밖을 봤다.
‘애초에 이 학교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아저씨를 만나러 가지 말걸.’
시작은 사소한 다툼이었다. 중학교 입학 후 가장 친했던 나희(가명·14)가 다른 아이들과 합세해 서연을 따돌렸다. 서연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지만 나희는 욕설과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혼자였다.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고통이 기다렸다. 친오빠는 틈만 나면 서연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머리를 때렸다. 엄마도 오빠 편을 들었다.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날 밤도 오빠의 잔소리 끝에 방문을 닫고 들어온 서연은 한참을 울고 나서 습관처럼 X(옛 트위터)를 켰다. 우울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죽이는 데 이만한 것이 없었다. 서연에게 X, 디스코드, 인스타그램같은 온라인은 가장 편한 공간이었다.
서연은 짧은 게시글 하나를 올렸다. 지금도 그 글을 올린 걸 후회한다고 했다.
“심심하다.”
5분도 안 돼 메시지 30여 개가 쏟아졌다. 프로필에 ‘12년생’이라고 버젓이 적혀 있었지만, 메시지를 보낸 열 명 중 아홉은 어른이었다. 키와 몸 사이즈를 대뜸 묻거나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가슴이나 엉덩이를 찍은 사진 한 장에 2000~3000원, 영상통화 20분에 10만 원.’
며칠이 지나도 메시지는 이어졌다. 무심코 화면을 내리던 서연의 손이 멈췄다. “드라이브 가자.”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말이었다. 서연은 “안녕하세요”라고 답했다.
30대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조금 달라 보였다. 자기 차를 타고 근처 바닷가에 가서 맛있는 걸 먹자고 했다. 어떤 맛집에 가고 싶은지 찾아보라고도 했다. 서연은 어른이 시키는 일을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그가 친절할수록 서연의 경계는 낮아졌다. 마라탕을 좋아한다고 하자 사주겠다고 했다. ‘학교도 집도 다 싫다’는 말에 진심으로 걱정하는 척했고, 함께 친구 욕을 하며 편을 들어줬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말에는 나비약(식욕억제제)을 대신 구해주겠다고도 했다. 선생님도 부모도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것들을 그는 물었다.
“제 옆에 아무도 안 남았을 때 저를 알아봐준 사람이었어요.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내 편이 돼서 도와주겠다고 하니까 이 사람만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온라인에서 만나면 자기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데 저한테만 알려준다고 했고요.”
그러다 약속을 잡았다. 서연은 온라인에서 친해진 사람과 직접 만나는 게 꺼려지지 않았다. 지난 여름방학 때도 프로아나(극단적 거식증)가 유행처럼 퍼져 다이어트 관련 오픈채팅방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놀기도 했다. “요즘 애들은 일상계(일상 공유용 계정)도 많이 파고, 아이돌이나 취미 같은 관심 사안이 맞으면 오프라인 모임도 자주 가져요.”
2025년 10월, 중간고사가 끝난 평일 오후였다. 만남 장소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번화가 이면도로였다. 그가 부탁한 건 딱 두 가지였다. 우리 사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 교복을 입고 나올 것. 아저씨는 여러 번 “어려서 더 좋다”고 말해왔다.
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창문이 내려갔다. “서연이? 오빠야!”
짧게 목인사를 하자 그가 얼른 타라고 손짓했다. 서연이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자 그는 운전 내내 말을 건넸다. 오늘 학교에서 재밌는 일 없었느냐고, 실제로 보니 다리도 길고 날씬하다고.
그러다 그가 갑자기 차를 틀었다. 가기로 한 식당이 아닌, 인적 드문 골목이었다. 그가 허리띠를 풀더니 이해할 수 없는 부탁을 했다. 거절하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빨리 들어주고 상황을 마무리하자고 생각했어요. ‘내가 나온 책임인가’ 싶으면서도, 제가 바보 같았죠.”
또 다른 날, 그는 영상을 찍자고 했다. “별로예요”라고 거절했다.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뭔가 잘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도 보고싶을 때 혼자 보겠다며 사진과 영상 요구는 계속됐다.
“얼굴만 안 나오면 아무도 나인 줄 모르겠지 싶었어요. 바보같이 믿었어요. 본인만 보고 지우겠다는 말도, 너만 특별하니 이런다는 핑계도, 다요.”
이후 서연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라인 알림부터 확인했다. 라인엔 매일 그의 메시지가 쌓였다. 거절할 수 없었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냥 버텼다. 서연이 연락을 뜸하게 하자 그는 태도를 바꿨다. 영상 캡처 화면을 일부 모자이크해 X에 올렸다. 영상을 삭제해줄 테니 다시 만나자고 했다. 하루종일 영상 유출 걱정이 컸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이후 몇 번의 만남을 거치며 그의 요구는 더 커졌다. 만남 내내 칭찬하고, 고민을 들어주면서 서연의 환심을 사려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서연을 부를 때면 “야”라는 고함과 함께 욕설이 뒤따랐다. 헤어질 때면 용돈이라며 10만원을 쥐여줬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둘만의 비밀이야.”
그러다 어느 날, 차는 또 골목으로 향했다. 그는 웃으며 성관계를 제안했다. 정말 영상을 지워주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이런 만남이 한두 차례 이어졌다. 늘 그의 차 안이었다. 룸미러에 갓난아기 사진이 걸려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아챘다.
“아저씨가 성적 욕구를 풀 때만 만나는 것 같았어요. 제가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싫었지만 제가 ‘을’이잖아요. 거절도 제대로 못 했죠.”
어느 날 서연은 라인 알림을 확인하고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았다. X 계정도 비공개로 돌렸다. 연락을 끊은 대가는 금세 돌아왔다. 서연의 이름과 학교, 나이, 일상 사진이 SNS와 단체 메신저에 퍼졌다.
‘XX 같은 X’. 더럽다, 문란하다는 의미를 담은 욕설과 함께 서연의 신체 사진, 협박의 메시지도 날아왔다. 길을 걸을 때마다 아저씨와 마주칠 것 같았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는 것도 두려웠다. 다들 자신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지금도 서연은 바닥만 보며 걷는다.
“다 제 탓으로 돌릴까봐 무서웠어요. 신고하면 저도 처벌받을까봐 걱정됐어요.”
수개월이 지나도록 서연은 신고하지 못했다. 2020년 개정된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은 대가성이나 자발성에 관계없이, 성인과의 성적 관계에서 청소년은 무조건 피해자로 규정한다. 서연은 몰랐다. 설령 알았더라도 부모님한테 혼날까 봐, 소문이 날까 봐 아무 것도 못했을 것이다.
급격히 10㎏이 쪘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먹어서였을까 싶었는데 생리도 멈췄다. 난생 처음 가본 산부인과에선 서연 혼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쪽팔린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다. 병원을 나선 뒤 서연은 혼자 있을 때 가끔씩 스스로를 해친다. 지난 일들이 떠오를 때면 피가 나도 아픈 줄 몰랐다. 강변에도 자주 간다.
“두세 번 죽으려고 갔어요.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떠올랐어요. 저보다 더 불쌍해서요.”
서연의 꿈은 소박하다. 친한 친구들과 바다에 놀러 가고, 맛집이나 카페에 가는 평범한 일상. 서연은 아직 열네 살이다.
우리 아이를 지키세요서울신문은 <소녀에게,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시리즈와 함께 온라인 성착취 징후와 대응법을 담은 인터랙티브 웹페이지를 개설했습니다. 아래 링크 및 QR코드를 통해 각각 10대 자녀를 둔 부모용, 청소년 당사자용 가이드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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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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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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