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샤인머스캣 속사정

박상숙 기자
수정 2026-03-27 01:00
입력 2026-03-27 00:12
농사꾼보다 기후변화를 온몸으로 먼저 느끼는 직업이 또 있을까. 경북 상주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한 농부는 몇 해째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포도는 알알이 영그는데도, 먹음직스러운 붉은빛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 지역 특산물로 유명한 곶감 역시 온난화로 품질 관리가 예전 같지 않다. 계절을 믿고 농사 짓던 방식이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
주작물인 캠벨 포도는 낮에는 충분한 햇빛을 받고 밤에는 서늘한 공기를 만나야 제 색을 띤다. 낮과 밤의 온도 차가 만들어 내는 빛깔이다. 그런데 한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열이 식지 않으니 색이 돌지 않았고, 상품성은 떨어졌다. 수확은 했지만 팔 수 없는 포도가 밭에 쌓였다.
결국 그는 품종을 바꿨다. 일본에서 들어온 샤인머스캣이었다. 색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가격도 높아 대안으로 여겨졌다. 비슷한 판단을 한 농가들이 재배 면적을 늘리면서 물량이 쏟아져 가격은 내려갔다. 겉으로 보면 풍작이지만 한숨은 줄지 않았다. 한때 고급 과일로 불리던 샤인머스캣이 넘쳐났던 데는 이렇게 달라진 계절이 겹겹이 쌓여 있다.
박상숙 논설위원
2026-03-2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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