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야스쿠니에 내 아버지 영혼 갇혔다”…한국 법원 첫 소송

권윤희 기자
수정 2025-12-23 19:17
입력 2025-12-23 18:28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 중 강제 징용돼 숨진 한국인들의 유족이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가족의 이름을 빼달라며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법원에 야스쿠니 합사 취소를 직접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된 것은 처음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는 23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인 군인·군속 유족 10명이 야스쿠니신사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합사 취소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고 밝혔다.
원고들은 야스쿠니신사가 관리하는 ‘제신명표’와 ‘제신부’ 등 사망자·사망일 등을 기록한 명부에서 가족의 이름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총 8억 8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소송 대리인단은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 과정에서 한국인을 동원해 전쟁터에서 사망하게 한 데 그치지 않고, 유족 동의 없이 야스쿠니신사에 인적 정보를 제공해 합사까지 이뤄지도록 했다”며 “이는 유족의 인격권과 종교·양심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유족에게 야스쿠니 합사는 단순한 종교의례가 아니라,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구조 속에 희생자를 편입시키는 2차 가해”라며 “전쟁으로 죽음에 내몰린 뒤 ‘천황을 위한 전몰자’로 규정된 상태를 끝내고, 유족이 원하는 방식으로 온전하게 추모할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견장에는 원고 8명이 일제 강제 징용으로 숨진 가족의 사진을 들고 함께했다.
원고 중 한 명인 이희자(82) 보추협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올해가 광복 80주년이라고 하지만, 야스쿠니에 갇힌 아버지는 아직 해방을 맞지 못했다”며 “아픈 역사를 왜 유족이 계속 감내해야 하느냐, 왜 나는 여전히 일본 식민지 피해자로 남아 있어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이 대표는 생후 13개월 때인 1944년 2월 아버지 이사현씨가 육군 군속으로 징용되면서 생이별했다. 1992년 한국 정부가 일본에서 받은 전사자 명부에서 아버지의 사망을 확인한 이 대표는 5년 뒤 일본 정부 기록에서 아버지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야스쿠니신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시설로 꼽힌다. 일제가 일으킨 전쟁에 동원돼 숨진 한국인 2만여명도 이곳에 합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 유족들은 1990년대 뒤늦게 이 사실을 확인한 뒤 일본 법원에 합사 취소 소송을 두 차례 제기했지만, “소송 제기 가능 기간이 지났다”는 등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족 6명은 지난 9월 일본 법원에 세 번째 합사 취소 소송을 제기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번 소송 대리인단은 “일본 사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한국 법원이 유족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해 줄 필요가 있다”며 “야스쿠니신사에 억지로 묶여 있는 희생자들을 역사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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