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팔며 돈보다 소중한 희망 얻죠”
수정 2010-09-18 00:24
입력 2010-09-18 00:00
‘빅이슈’로 자활 꿈 키우는 노숙인 김영식 씨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한 대중문화잡지로, 노숙자에게 판매를 맡겨 자활을 돕는 것을 목표로 세계 36개국에서 발간되고 있다. 오후 판매시간인 5~8시 김씨의 판매 도우미로 일하며 그를 지켜봤다. “돈이 아니라 ‘생각’을 얻었다.”면서 활짝 웃는 그의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어 보였다.
●뒹굴던 노숙 습관 버리는 게 쉽지 않아
한 시간쯤 지나자 목이 따끔거리고, 다리와 팔이 후들거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스캔(scan)’하는 숱한 눈동자들이 초 단위로 온몸에 날아와 꽂혔다. 노골적으로 경멸의 눈빛을 보내는 행인들의 표정에 낙담할 때쯤, 한 여성이 다가왔다. 자신을 김미혜(27)라고 소개한 그는 “인터넷을 통해 빅이슈를 알게 됐다.”면서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는다는 취지가 좋은 것 같다.”고 말하며 한 권을 사들었다. 오후 첫 개시였다.
6시가 지나자 퇴근길 직장인들이 지하철역으로 몰려들었다. 잡지를 사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회사원 최영탁(32)씨는 직장 후배에게 준다며 잡지 2권을 샀다. 김영식씨는 “단골이 5명이나 있어요. 눈 인사를 건네며 지나가는 사람도, 힘내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죠. 그럴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합니다.”라고 말했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김씨는 노숙자가 됐다. 수원역·대전역을 전전하며 노숙한 지 3년. 노숙인 친구의 “우리 같은 사람만 팔 수 있는 책이 나왔다던데….”라는 말에 빅이슈 사무실을 찾았다. 노숙 습관을 고치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느 날 한 시민이 책 한 권을 사고는 만원짜리를 낸 뒤 거스름돈을 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저는 구걸하는 게 아닙니다. 잡지를 판매하는 겁니다.” 당황했던 남자는 곧 김씨를 이해하고 잡지를 2권 더 사갔다.
3000원짜리 잡지를 팔면 판매원에게 1600원의 수익이 생긴다. 하루에 다섯권도 팔지 못하던 김씨는 이제 하루 20~30권을 판매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날도 26권이나 팔았다. 노숙생활도 접고 빅이슈코리아에서 얻어준 고시원에서 생활한다. “한 달 고시원비 25만원, 식비, 교통비를 떼고도 잘만 하면 저축이 될 것도 같다.”면서 웃었다.
●차곡차곡 돈 모아 속옷가게 노점 열 것
김씨의 꿈은 속옷가게 노점을 여는 것이다. “노숙할 때는 속옷을 제대로 챙겨 입는 게 불가능했거든요.” 동료 판매원들과도 친구가 됐다. 이번 추석은 동료들과 남양주 다윗공원에서 보낼 예정이다. “세상에 참 불만이 많았어요. 그러니 얼굴이 항상 굳어 있고…. 그랬는데 이젠 저절로 웃음이 나와요. 제 웃음을 보고 많은 분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사진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2010-09-18 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