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자업자득/오일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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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7-04 00:00
입력 2009-07-04 00:00
요 근래 잇몸이 안 좋았다. 치과에 가니 치아 뿌리에 염증이 생겼단다. 힘들어도 치아를 살려 보라고 권고한다. 그러면서 슬쩍 걸친다. “염증을 긁어내도 완치가 안 될 수도 있어요.” 다른 치과를 갔더니 “결국 뽑아야 돼요.”라며 임플란트를 권한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고민 끝에 ‘살리는’ 쪽으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고행’의 시작이다. 열흘 뒤에 수술 날짜가 잡혔다. 이가 흔들려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잇몸은 부어올라 꾹꾹 쑤신다. 이놈의 치통만 없으면 세상 정말 행복할 것 같은 심정이다.

드디어 수술날. 쫙 벌린 입속으로 소름끼치는 기구들이 들락거린다. 거의 한 시간, 이런 ‘고문’이 없다. 마취가 풀리면서 고통은 두배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 차도가 없다. 수술은 실패했다. “워낙 상태가 안 좋았어요. 뽑으셔야 되겠네요.” 웃음밖에 안 나왔다. ‘이 고생하고 결국 원점이구나.’ 그래도 얻은 것은 있다. 치아 관리를 제대로 못한 나를 질책하고 새롭게 의지를 다진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반드시 이는 닦고 자리라’.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2009-07-0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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