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앞에 드리운 커튼 찢어버리는 것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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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08-08 00:00
입력 2008-08-08 00:00

밀란 쿤데라 에세이집 ‘커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79)의 소설에 대한 소회를 엿볼 수 있는 에세이집 ‘커튼’(박성창 옮김, 민음사 펴냄)이 나왔다.

소설은 무엇인가, 소설의 기능과 소설속 희극적 요소, 미학과 삶 등 다양한 사유의 세계를 펼친 이 에세이집은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 텍스트로 삼았다.

쿤데라는 소설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까. 그는 “세상 앞에 드리운 커튼을 찢어 버리는 것이 바로 소설”이라고 정의한다. 세상은 가면을 쓴 상태인 만큼 이를 찢어내 삶의 진실한 모습을 보게 만드는 역할을 소설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이 역사적 설명이나 사회의 묘사, 이데올로기 옹호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소설은 무엇보다 인간의 실존을 파헤치는 데 복무해야 한다는 게 쿤데라의 생각. 그는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 ‘인간의 양’을 끌어들여 이를 설명한다.

일본인 버스 승객들이 술 취한 외국 병사에게 희롱당한 사건을 다룬 이 작품에서 끝까지 외국 병사가 미국 출신이라는 점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인간의 양’은 단순한 정치적 텍스트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사회운동, 전쟁 등 역사 그 자체는 소설가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소설가는 역사의 하인이 아닌 만큼 인간 실존의 주위를 돌며 빛을 비추는 탐조등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소설가’에 대한 단상도 담겨 있다. 쿤데라에 따르면 소설가는 자신의 영광이 영원하다는 야심을 품은 사람들이다. 소설가란 요컨대 사후에도 살아 있도록 영원한 가치를 지닌 소설을 쓰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이러한 야망 없이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파렴치한 일”이라고 단정한다. 판에 박힌 진부한 소설을 쓰는 작가는 경멸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그의 주장이 사뭇 설득력이 있게 다가온다.1만 3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2008-08-08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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