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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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기자
수정 2008-03-24 00:00
입력 2008-03-24 00:00
전업주부 A(58)씨는 결혼 25년만에 남편 B(53)씨와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회사원인 남편은 신혼 때부터 회사일로 매일 늦었고 주말에도 출근하기 일쑤였다. 아내가 집안일을 의논하려고 들면 “피곤하다.”며 묵살했다. 두 아들의 교육도 A씨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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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씨는 돈 관리도 맘대로였다. 친구에게 2800만원을 빌려줄 때도, 사채 1억 1000만원을 빌릴 때도 아내에게 말 한마디 없었다. 사채를 어디에 썼는지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법원은 지난 1월16일 부부의 이혼을 결정했다. 가사와 양육에 무관심했던 남편에게 가정파탄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고, 아내에게 위자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부부재산 2억 7500만원은 아내 60%, 남편 40%의 비율로 나눠 갖도록 했다.

‘전업주부가 이혼하면 쪽박찬다.’는 것은 옛말이 됐다. 요즘 법원은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소송 때 여성의 가사노동을 남성의 경제활동과 대등하게 평가하며 전업주부가 재산의 50∼80%를 분할받도록 판결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홍창우 공보판사는 23일 “가사노동이 혼인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직장생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가정법원도 시대 흐름을 반영해 전업주부의 재산분할 비율을 50%로 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산 관리 등 재테크 능력이 뛰어난 주부일수록 분할받는 재산이 많아진다고 했다.

결혼 25년차인 전업주부 C(56)씨는 2005년 남편(55)과 이혼하면서 재산 27억 744만원 가운데 81%를 분할받았다.C씨는 결혼 후 9년간 간호사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98년 용인시 수지읍에 땅을 구입했다. 수지 택지사업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자 5억원을 보상금으로 받았다. 인근 아파트를 분양받고, 건물도 신축한 결과 재산은 날로 늘어났다. 남편 월급의 몇 십배를 웃도는 재산을 재테크로 벌어들인 것이다. 법원도 재산분할 소송에서 C씨의 재테크 능력을 인정했다.

친정 아버지가 사준 아파트를 밑천으로 재산을 늘려간 전업주부 D(52)씨도 결혼 24년 만에 이혼하며 재산 14억원 가운데 87%를 분할받았다. 남편(56)이 중국·러시아 등 해외에서 일하며 집안을 돌보지 않았고, 아내 몰래 부동산을 처분·탕진했다는 점을 법원이 고려했다.



여성의 재산분할 비율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는 사법연수원 전주혜 교수가 2005년 재산분할 판결과 1998년 판결을 비교·분석해 발표한 논문 ‘재산분할에 대한 판결례 분석’에서도 나타났다.1998년 선고된 재산분할 소송 94건 가운데 여성이 재산의 30% 미만을 분할받은 사례가 33건으로 35.1%에 이르렀다. 반면 2005년 선고된 107건에서는 30% 미만의 재산분할이 18건,16.8%에 그쳤다. 반면 40∼50% 재산분할한 판결은 49건,45.8%로 1998년의 23건,24.5%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았다. 전 교수는 “판례를 분석해 보니 여성의 재산분할 비율은 나이가 많을수록, 결혼기간이 길수록 높아졌다.”면서 “재산 증식에 적극 기여한 전업주부는 50% 이상 재산을 분할받는 것이 현재의 추세”라고 설명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2008-03-2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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