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본 한일통사(韓日通史) /정재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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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12-14 00:00
입력 2007-12-14 00:00
하타(秦)씨는 가야계 신라 도래인 집단으로, 야마토노 아야(東漢)씨와 더불어 도래계 씨족의 최대세력이었다. 하타씨가 사가노(嵯峨野)지역에 정착한 것은 5세기 후반 무렵이었다. 하타씨는 토목기술이 뛰어나 오늘날 교토(京都)의 중심부인 헤이안쿄(平安京)를 축조했다.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622년 창건된 고류지(廣隆寺)는 하타씨의 원찰이기도 했다. 고류지라는 절 이름도 창건자의 하타노 가와카쓰(秦河勝)의 실제 이름인 고류(廣隆)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 도시는 교토~쓰시마~부산 왜관~서울~북경으로 이어지는 ‘은의 길(실버로드)’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일본의 은화인 경장정은(慶長丁銀)은 조선을 비롯한 대외무역에서 지불수단으로 쓰였는데, 특히 17세기 말에는 왜관에서 조선상인과 거래하는 은화가 나가사키에서 중국상인과 거래하는 양의 7배가 넘었다.‘은의 길’은 중국의 생사나 견직물을 수입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는데, 교토는 결국 ‘은의 길’의 출발점이자 비단길(실크로드)의 종착점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교토에서 본 한일통사(韓日通史)’(정재영 지음, 효형출판 펴냄)는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 한반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교토라는 창으로 한·일관계의 역사를 펼쳐놓은 역저이다.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인 및 일본인과 일본을 돌아보는 역사기행을 이끌었고, 한국에 사는 일본인들에게 일본어로 두 나라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지은이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와 나라는 개인과 개인의 경우와는 달라서 아무리 사이가 나쁘더라도 짐을 싸들고 이사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며, 함께 생존하고 번영하는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며,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1995년에는 일본에서 ‘여행가이드가 없는 아시아를 걷다. 한국 서울, 강화도, 제암리, 독립기념관’을 펴내기도 했다.‘한일통사’가 한국인들의 한·일관계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면 ‘여행가이드’는 일본인들에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교토는 흔히 천년고도(千年古都)라고 불린다.794년 간무덴노(桓武天皇)가 수도로 정한 뒤 메이지덴노(明治天皇)가 1869년 도쿄로 옮겨갈 때까지 수도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문화도시로 존재했다.

지은이는 9개의 키워드를 제시하며 한·일관계에서 교토의 역사를 해부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창신교토(創新京都)이다. 이 도시가 고색창연한 역사도시가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첨단을 지향하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교토는 조선을 빈사상태로 몰아넣은 침략의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권력의 똬리를 틀고 있던 왜란참화(倭亂慘禍)와 대한제국을 폐멸시킨 병탄애련(倂呑哀憐)의 본거지였다.

그런가 하면 교토는 식민지시대 많은 한국인이 유학생이나 노동자로 건너가 짙은 체취를 남긴 고투모색(苦鬪摸索)의 현장이자, 일본제국의 패전 이후 한국인과 일본인이 갈등하고 대립하면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해하고 연대하는 움직임도 나타난 상생공영(相生共榮)의 터전이라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이 책을 읽다 보면 한국과 일본은 예부터 넓고 깊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숙한 운명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교토를 여행하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에게 한·일관계의 역사를 깊이 성찰하고 공존번영의 역사인식을 모색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1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2007-12-1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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