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들을 귀와 보는 눈/차동엽 신부·천주교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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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9-18 00:00
입력 2007-09-18 00:00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의 그 유명한 말이다. 당연한 듯한 이 말은 그저 단순한 의미로 해석될 수 없음을 안다. 이 오도송(悟道頌)을 이해하는 수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일 것이다. 범부들에게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말일 터요, 인식론과 해석학에 좀 전문적 조예가 있는 전문인에게는 뭔가 유의미한 진술일 터요, 고승들에게는 무명(無明)과 열반(涅槃)의 경계를 넘나드는 삼매경의 환호일 수 있을 터이다. 그러므로 한 구도자의 일생에 거친 명상으로부터 나온 그 깊이 있는 철학을 함부로 논하는 것은 경솔이며 무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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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같은 말을 들어도 각자의 이해력만큼만 알아듣는다. 같은 현상을 보아도 각자의 안목만큼만 본다. 이에 대하여 지난 세기 하반기에 문학계의 거두로 존경받았던 구상 시인은 노년에 이르러 경험한 신세계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다.

“이제사 비로소/두 이레 강아지만큼/은총에 눈이 뜬다.//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만상이/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나고 죽고 그 덧없음이/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이제사 하늘이 새와 꽃만을/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눈물로써 감사하노라.(하략)”

시인이 ‘두 이레 강아지만큼’ 눈 떠서 접한 ‘은총’은 이렇게 시인의 세계관과 삶의 자세를 바꾸어 놓았다. 곧 냉철한 이성으로 생로병사에 깃든 영원의 편린을 꿰뚫어 보게 하였으며 천진의 감성으로 ‘하늘’의 보살피심에 눈물 흘리게 하였다.

요 몇 주, 새롭게 공개된 마더 테레사의 편지들로 인해 국·내외 언론은 들끓었다. 테레사 수녀의 10주기를 기념하여 발간된 책 속, 테레사 수녀가 고해 신부에게 보낸 40여 통의 편지에서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기도하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공격적인 무신론을 주장하는 논객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한 방송국 난상토론 자리에서 “아주 감동적이고 정직한 고백”이라며 환영했다.

국내에서도 일면 그대로를 받아들인 다양한 여론들이 반사적으로 쏟아졌다.

이런 글들을 접하면서 필자는 앞에서 언급된 바 이해력과 안목의 차이에서 기인된 ‘경솔’ 내지 ‘무례’를 연상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우연스럽게 필자의 생각과 광범위하게 오버랩되고 있는 한 시인의 건강한 사량(思量)을 대면하였다. 토를 달 것도 없이 블로그에 실린 조병준님의 글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 평생을 ‘몸의 고통’과 싸우며 살아야 했던, 자신의 몸이 아니라 ‘타인의 몸’의 고통과 싸우며 살아야 했던 사람이 신의 존재를 매순간 확인할 수 있었다면, 그게 차라리 거짓말이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쓰레기터에 버려진 아기들을 보면서 어찌 신의 존재를 회의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구더기가 파먹고 있는, 그러나 아직 살아 있는 육신을 만지면서 어찌 신의 부재를 의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중략) 이미 여러 번 말로 했고 글로 썼던 이야기지만 오늘 한 번 더 반복하련다. 내가 마더 테레사와 사랑에 빠졌던 그 아침의 이야기를. 새벽 6시에 시작하는 수도원의 아침 미사. 마더 테레사는 언제나 바로 저 자리에 저 자세로 앉으셨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새벽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신부님의 강론에 졸립고 지겨워 내가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을 때 거기서, 마더 테레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계셨다. 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리하여 너무나 신성한…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던, 앞으로 가톨릭이 될지 말지 아무도 모르는. 내가 신을 만난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저 연약한, 저 부서지기 쉬운 몸을 가진 인간이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해냈구나…(하략)”

차동엽 신부·천주교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2007-09-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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