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임정 88돌/이목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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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기자
수정 2007-04-14 00:00
입력 2007-04-14 00:00
2차대전 당시 많은 임시정부, 망명정부들이 생겼다.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스, 노르웨이, 폴란드, 유고…. 독일과 이탈리아에 의해 점령당한 나라들이다. 거꾸로 일본이 사주해 인도 임시정부가 싱가포르에 세워지기도 했다. 이들 망명정부들은 대부분 옛 집권세력이 주축을 이뤘다. 나치나 파시스트에 의해 영토가 점령당했어도 과거 집권세력이었던 만큼 어느 정도 자금력과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출범했다. 왕조국가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민주공화정을 표방했다. 주도세력은 지식인 민족대표들. 남의 땅 중국 상하이에서 축적한 돈도, 조직도 없이 새 나라 건설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열악한 주변 환경, 내부 분열을 딛고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26년을 싸운 역사는 기적에 가까웠다.2차대전이 끝난 뒤 다른 어떤 임시정부보다 합법정부로 인정받을 위치에 있었다고 본다. 드골 정부처럼 임정이 해방공간에서 역할을 할 자격이 충분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못 된 데는 미국과 소련의 알력 등 여러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임정의 외교력 미흡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임정 인사들이 조금더 단합해 국제사회로부터 합법정부로 인정받았으면 어찌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한반도 분단, 동족상잔의 전쟁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개인자격으로 귀국한 백범 김구 선생은 환영대회 연설에서 ‘단결’을 반복했다.“민주단결의 정부,3·1혁명의 민족단결 정신 계승, 각 당파의 철과 같은 단결….” 민족이 단결하지 못한 점이 백범 선생에게 얼마나 한이 되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민족의 단합과 외교력 강화 요구는 현재 진행형이다. 어제는 임정 수립 88돌 되는 날. 미수(米壽)를 맞은 임정의 의미가 점차 잊혀져 가는 게 안타깝다. 국민통합과 남북통일에 임정 정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아쉬움을 남긴 임정 외교를 후손들이 채워줄 필요가 있다.2010년 상하이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린다. 상하이 임정 청사를 세계의 관광객이 꼭 들르는 명소로 만들자. 다른 임정유적도 제대로 복원하자. 임정을 공식정부로 인정하지 않은 강대국의 오판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2007-04-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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