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할머니의 점심 식사/성석제 소설가
수정 2007-04-10 00:00
입력 2007-04-10 00:00
마을회관에는 여느 농촌의 마을회관처럼 대형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었다. 식탁을 앞에 놓고 노인들이 여남은 명 둘러앉아 케이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중이었다. 막 식사를 마친 듯 부엌에서는 설거지가 한창이었는데 할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온 할머니는 내 차에 오르자마자 한숨부터 쉬었다. 평생 혼자 조석을 끓여먹으며 살다 갑자기 무슨 팔자인지 여러 사람 끼니를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하려니 힘들다는 말씀이었다.
“돌아가면서 하는 게 아닌가요?” 하고 묻자 할머니는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마을회관을 새로 지으면서 지방자치단체와 협의를 하여 마을회관 앞마당에 어린이 놀이시설을 설치했다. 몇 안 되는 동네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것을 마을회관에 나와 있는 노인들이 지켜봐줄 수 있으므로 들이며 읍에 나가 일을 하는 부모들이 한결 안심할 것이라는 취지에서였다. 그 대신 마을회관의 노인들에게 군것질거리나 사 드시라는 정도의 약소한 금액이 시청에서 지급되었다.
매일 오전 마을회관에 나오는 노인들은 그 돈을 공동의 반찬값으로 하여 점심을 해먹기로 했다. 따로 1인당 한 달 만원씩을 내서 쌀이며 다른 필요한 부식을 사는 데 쓰기로 하고 돌아가며 하루에 두 명씩 당번을 정해 조리와 설거지를 책임졌다.
막상 시행을 하자 문제가 생겼다. 가장 젊은 사람과 가장 나이 든 사람의 차이가 여느 집 고부간처럼 나이 차이가 났으므로 자연히 젊은 사람이 일을 자주, 많이 하게 된 것이었다. 내 할머니의 경우는 가장 젊은 축에 속했다. 그래서 원래는 두 사람씩 돌아가면서 하면 일주일에 한두 번 돌아올 당번이 이틀에 한 번 꼴이 되어서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일 모레 백살인 노인한테 밥을 하라고 할 수가 있나. 밥을 한다 한들 간을 못 맞추니 짜고 시어서 결국은 젊은 우리가 하게 될 수밖에 없니라.”
올해 팔순을 맞는, 그래도 젊은 할머니가 조용히 결론을 맺었다.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면서 90대 노인이 드물지 않은 시절이 되었다. 이들에게는 연금이 따로 없고 수용시설이 달리 없다. 농촌 공동체가 그나마 사회 전체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을 대신 물어주고 있는 셈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숲이나 논의 가치를 목재나 쌀생산량의 경제성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물을 가두었다 천천히 내보내서 환경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산소를 생산하고 산책할 공간을 제공하며 일거리를 준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언젠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원천이다. 이것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것인가.
농촌에서는 공동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어진 지 오래 되었다는 건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마을회관의 텔레비전 소리도 그칠지 모른다. 공동체의 의미가 사라지면 우리에게는 거대한 짐이 남을 것이다. 어쩌면 그 짐이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성석제 소설가
2007-04-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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