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외국인 근로자 설 자리 없나요?/김균미 경제부 차장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7-02-14 00:00
입력 2007-02-14 00:00
2003년 2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했을 즈음,‘이라크전쟁’을 취재하러 후배 사진기자와 함께 쿠웨이트에 갔다. 태국 방콕에서 갈아탄 항공기에 들어서면서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운이 감도는 쿠웨이트행 항공기가 일하러 가는 필리핀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거의 한달가량 머물면서 목격한 쿠웨이트는 내국인과 외국인이 철저하게 분리된 이중 사회였다. 거리에는 쿠웨이트 사람들보다 동·서남아, 이집트 출신 근로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저임금을 받고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렌터카 운전기사였던 50대 인도 출신 후세인. 간단하게 같이 점심을 먹자는 것도 극구 사양하며 불편해하던, 차별이 몸에 밴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맛이 씁쓸하다.

쿠웨이트행 항공기에서 만났던 ‘필리핀 가정부’들을 3년 뒤 다시 만났다. 싱가포르에서였다.

싱가포르의 웬만한 가정에는 집안 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필리핀 가정부들을 두고 있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외국인 가정부를 고용하려면 정부에 신청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고용주는 월급의 45∼50%를 국가에 내고 국가는 연금 형식으로 적립했다 외국인이 출국할 때 내준다고 한다. 월급을 담보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관리,‘통제’하고 있다.‘보모의 나라’답게 쿠웨이트와는 또 다른 형태로 내·외국인을 구분하는 걸 보며 속이 편치가 않았다.

문화와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스쳐 지나가는 이런 모습들은 이들 나라들에 대한 이미지로 오래토록 남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결론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에 체류중인 외국인은 91만 149명이다. 이중 불법 체류 외국인이 20%인 18만 6894명이다. 이제는 수도권의 중소기업 공장에서는 물론이고, 서울 시내 아파트 공사장이나 도로 공사장에서 낯빛이 검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자주 보게 된다.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며 필리핀 가정부의 인기가 상한가를 친 적도 있다.

때문에 지난 11일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는 외국인, 특히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경직된 태도를 되돌아보는 전기를 제공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올 1월1일부터 고용허가제로 대체된 산업연수생제도가 1993년 11월 국내 3D산업 중소기업들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되면서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들어와 일하기 시작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올해로 제도 시행 14년째를 맞지만 한국에 사는 외국인 근로자나 전문직 종사자는 여전히 서울이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최근 발표된 한국소비자보호원의 ‘국내 거주 외국인 소비생활 실태’는 이같은 사실을 잘 반영한다. 응답자의 33%는 바가지 요금을 경험했고,13.6%는 가게에서 상품을 사려다 거절당했다. 상품 구입을 강요당한 경우도 6.8%였다. 푸대접과 무시당한 경험이 있다는 얘기다. 조사대상의 절반 이상이 월 15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이었다는 것이 결과와 무관할까. 부적절한 대우로 받은 이들의 상처는 정부가 국가 이미지 제고에 쏟아붓는 엄청난 예산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다.

출산율 저하와 업종간 인력수급의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3D업종의 인력을 이민으로 메워나가는 나라들이 많다. 이에 따른 불법 이민과 외국인 범죄 증가는 공통의 골칫거리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도 불법 체류를 포함한 외국인 문제를 현실로 인정하고 대응해야 한다. 여수처럼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일회성으로, 감정적으로 접근했다가는 제2, 제3의 여수 사건이 터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 경제와 사회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인정하고 합당한 대우와 세분화된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

김균미 경제부 차장 kmkim@seoul.co.kr
2007-02-14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