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談餘談] 여군의 두 얼굴/이순녀 국제부 기자
수정 2006-12-16 00:00
입력 2006-12-16 00:00
그동안 휴일과 휴가를 이용해 두달에 한번꼴로 근무지를 오가며 애틋한 정을 키웠던 이들이 ‘부부군인 보직조정’ 제도를 통해 한 부대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됐다는 대목을 읽고서는 ‘우리 군도 많이 선진화됐구나’싶어 내심 뿌듯했다. 여군이 4000명에 달하고, 부부 군인도 700여쌍을 헤아린다고 하니 제 아무리 남성중심적인 군대라 해도 안 변하고는 못 배기겠거니 나름 짐작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도 안 돼 우리 군이 여전히 구태의연한 사고의 틀에 갇혀있음을 확인하는 뉴스를 접했다. 국방부가 지난 13일 국내 최초 여성 헬리콥터 조종사인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제기한 ‘퇴역 처분 취소’ 소청을 기각했다는 소식이었다.
1979년 여군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한 피 중령은 여군 최초로 1000시간 비행기록을 세운 프로 군인이자 군내의 불합리한 남성 문화에 맞서 여성 후배들의 인권 보호에 앞장선 맹렬 여성이다.2002년 유방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는 군 복무에 방해된다며 암에 걸리지 않은 유방까지 함께 절제할 정도로 사명감도 투철하다.
수술 이후 아무런 후유증 없이 4년을 근무했던 그에게 군 당국은 지난 9월 갑작스럽게 전역 명령을 내렸다. 암 병력이 있거나 유방을 절제할 경우 전역토록 규정한 군 인사법 시행규칙을 적용했다. 병이 완치된 상태인데 과거 암 병력을 문제삼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유방절제를 전역 사유로 적시한 대목은 더욱 황당하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남녀차별적인 규칙을 당당히 명시하는 군 당국의 시대착오적 배포에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피 중령은 국방부의 인사소청 기각 결정에 맞서 행정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여군 후배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그의 다짐이 우리 군의 진정한 선진화를 앞당기는 의미있는 결실을 맺게 되길 기대한다.
이순녀 국제부 기자 coral@seoul.co.kr
2006-12-1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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