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가볍지 않은 ‘연애의 무게’
이순녀 기자
수정 2006-11-18 00:00
입력 2006-11-18 00:00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은 이현(李現). 정부 중앙부처의 전도유망한 엘리트 공무원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영혼을 뒤흔들었던 여인의 모습과 꼭 닮은 이진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 현실의 일상에 무기력한 이진에게 재정적 지원을 약속하는 대가로 3년간의 계약결혼을 제안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차츰 사랑으로 무르익을 즈음, 이현이 결혼전 약속을 어기고 이진의 기록을 훔쳐보면서 비극적 사랑은 파국을 맞는다.
소설은 외양상 사랑에 무관심한 여자와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의 애절한 연애담으로 비치지만, 한꺼풀 들여다보면 사이사이 다양한 주름을 숨겨두고 있다. 이진의 운명은 어머니에게서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어린 이현이 매혹됐던 여인은 이진의 어머니였고, 그녀 역시 영혼을 기록하는 운명 때문에 남편이자 이진의 아버지인 왕손 이세(李世)공을 파멸로 이끌었다. 이진이 죽기 전 딸을 낳은 것은 이 비극적 운명이 끝없이 되풀이될 것임을 암시하는 결말이다.
안개에 싸인 듯 모호하고, 신비로운 이진의 캐릭터는 이 소설을 현실의 사랑이라기보다 삶에 대한 우화로 읽히게 한다.“이진은 진실, 정의 등 젊은 시절 가치롭게 여겼던 정신을 의인화한 관념적인 존재이며, 이현은 한때 순수하게 진실을 추구했으나 어느덧 일상에 매몰된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소설은 ‘이진의 기록’이란 이름으로 네편의 단편을 액자 형태로 껴안고 있다.‘토토로의 집’등 세편은 소설의 줄거리와 상관없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외알 안경을 낀 사나이’는 이진과 이현의 파국을 불러오는 계기와 연관돼 있다. 모범적이고 보수적으로 살아온 정부 고위층 인사가 한평생 동성애적 갈망을 숨기고 살아왔음을 고백하는 ‘외알’는 주인공이 이현의 직장 상사라는 게 밝혀지면서 결말과 교묘하게 맞물린다.
200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등단한 작가는 두번째 소설 ‘달의 제단’(2004)에서 종가의 비극적 운명을 탄탄하고 능란한 솜씨로 다뤄 호평을 받았다.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문학에 뛰어든 작가는 “책상물림의 글쓰기가 얼마나 깊이와 울림을 지닐지 늘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서 “이번 소설도 기존의 연애소설과는 다른 내용과 형식을 고민했는데 독자들이 얼마나 공감을 느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6-11-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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