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권의 책] ‘갈등과 반목’ 칼의 문화를 버려라
수정 2006-10-28 00:00
입력 2006-10-28 00:00
성배와 칼/리안 아이슬러 지음
힘센 자의 성공 논리로 점철되어온 지배 중심의 사회체제를 비판하고 평화의 대안으로 성배의 문화를 강조한 ‘성배와 칼’.
이 책의 저자인 리안 아이슬러는 인류학, 여성학, 사회학을 두루 아우르며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만들어온 지배문화를 ‘칼의 문화’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인간이 끊임없이 분쟁을 일삼는 것도 ‘칼’의 역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마치 펜은 칼보다 무섭다는 말을 실감나게 할 만큼 인류학자 시각에서 지난 역사를 속속들이 분석하여 파헤치고 있다.
반면 대립보다는 협력과 공존을 중요시하는 공동협력 사회체제를 성배의 문화라고 칭한다.
아이슬러는 성배로 상징되는 ‘여신’을 중시한다. 여성의 출산과 자손번창, 심지어 죽음까지 성스럽게 덧입힌다. 남녀가 평등했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도 없었고 의사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루어졌던 신석기시대를 성배문화의 기원으로 잡는다. 또 크레타문명을 재조명하며 “크레타는 역사 기록상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대등한 동반자로서 조화를 이루어 즐겁게 지낸 마지막 세상 같다.”고 극찬하고 있다.
그러나 유목민족의 침략으로 신석기시대는 무너지고, 청동기와 철의 무기를 만들어내면서 인류의 전쟁이 지구상에 등장한다. 텐트만 접으면 삶의 터가 바뀌므로 힘이 약한 여자들을 쉽게 납치, 약탈하여 노예화할 수 있던 유목민사회에서 ‘여신문화’는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야금술과 남성우월성이 자리잡혔다. 저자는 로마제국 시절 저술된 성경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비판하는데, 약자인 여성을 귀하게 섬겼던 예수님의 모습은 가려지고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는 주장이다.
결국 인류가 평화를 지향하기 위하여 칼의 문화가 짓밟아버린 성배의 문화를 되찾는 새로운 관점을 정립해야 한다고 아이슬러는 강조한다. 죽음이 아닌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피라미드식의 위계질서보다는 연대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공동협력사회를 이룰 때 인류의 평화가 도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보여준다. 그런 사회를 지향해갈 때 우리 사회는 21세기 지구촌의 화두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을 덮으며 잠시 한국사회 속에 녹아 있는 칼의 문화를 되새기게 된다. 특히 조선시대 이래 600년간 이 땅에 뿌리박아온 부계사회에서 휘두른 칼의 위력에 짓밟힌 여성들의 슬픈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하다.
당시 이화고녀를 졸업한 씩씩하셨던 어머니, 온화하고 항상 인내하시던 모습의 외할머니, 그 윗대 할머니들은 또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그 모습은 모르지만 분명히 가부장적인 가치로 움직이던 사회에서 당신들의 주장은 접은 채 아이들 젖을 먹이고, 밥하고, 시부모님, 남편의 옷을 밤새워 지었으리라!
이제 세상이 많이 변하였다고 하나 곳곳이 아직도 칼의 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들의 현실이다.
이 책을 통하여 인류역사에 숨어 있는 성배적인 속성이 현대사회에 승화된 모습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정의감마저 치솟는다. 그래야만 남·녀를 불문하고 현대인 모두의 삶이 편안해 지리라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해졌다. 심리학자 샌드라 뱀의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속성이 아닌, 적응력을 강조하는 ‘양성의 문화’가 중요하다는 주장이 바로 이 저자의 ‘성배문화’와 접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나눔과 섬김의 철학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박은경 대한YWCA연합회장·인류학 박사
2006-10-2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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