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664)-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10)
수정 2006-08-08 00:00
입력 2006-08-08 00:00
제2장 四端七情論(10)
퇴계는 고봉으로부터 받은 별지를 천천히 읽어 보기 시작하였다.
“‘사물의 이치에 이른다.(物格)’ 또는 ‘이치가 이르다.(理到)’는 설에 대해서는 자세한 가르침을 받았으니 기쁘고 다행스러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논변하신 ‘행위하지 않는 본체’와 ‘지극히 신묘한 작용’ 같은 말씀은 은밀하고 미묘한 이치를 더욱 정밀하게 밝혀 드러낸 것이니, 되풀이하여 음미하매 마치 눈앞에서 가르침을 받는 듯하여 더욱더 깊이 감복됩니다. 다만 자세히 보건대 그 사이에 도리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허물이 있는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살펴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조정의 논쟁이 참으로 심각한데, 과연 의리에 비추어 마땅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일찍이 우리 시대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까닭에 놓여나기를 빌어 허락을 받았으니, 입을 열어 일에 대해 논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므로 장차 다만 입을 다물고 침묵하려 할 뿐입니다. 그리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김별좌의 편지를 받고서 선생님께서 제조(提調)에서 풀려나는 은혜를 받으셨음을 알았습니다. 멀리서나마 크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요사이의 형편이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다만 하늘의 명령을 들어야 할 뿐이니, 모름지기 먼저 근심하고 두려워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최근에 ‘성리대전’을 보다가 우연히 황면재(黃勉齋)가 진태구(陳太丘)의 일을 논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말이 준엄하고 빼어나 나약한 사람을 일으킬 만하니, 실로 제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하겠습니다. 아울러 살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고봉이 쓴 마지막 편지는 편지의 내용대로 ‘경오년(1570년) 11월15일 후학 대승이 절하며 올린’ 편지이다.
이 편지에 퇴계가 답장을 쓴 것은 11월17일이니 고봉이 쓴 편지는 하루 만에 ‘먼 길을 애써 달려온’ 사람에게서 전해졌고 퇴계 역시 고봉의 편지를 받자마자 하루 만에 답장을 쓴 것이 확실한 것이다.
퇴계가 숨을 거둔 것은 답장을 쓴 지 20여 일 후인 12월8일. 그러므로 퇴계의 답장 역시 최후의 편지인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편지에서 고봉이 ‘갑자기 무안 사람이 전해주는 10월15일의 선생님 편지를 받았습니다. 삼가 건강히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고 위로되는 마음 한량없었는데 하물며 자세하신 가르침을 받았으니 기쁨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고봉은 10월15일에 쓴 퇴계의 편지를 뒤늦게 받고 그 답장형식으로 마지막 편지를 써 보낸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도 한 번 더 고봉과 퇴계 사이에 편지가 오고간 사실은 있으나 고봉의 편지는 한 달 전 퇴계가 보낸 편지를 받은 후 그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을 ‘춤을 추며 뜀을 뛰어도 그 즐거움을 다 드러내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표현하고 있음인 것이다.
2006-08-08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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