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성으로 빚은 ‘품격’
임창용 기자
수정 2006-05-16 00:00
입력 2006-05-16 00:00
“네 폭의 병풍에 각각 나무와 꽃, 열매 등의 소재를 써서 네 계절을 상징적으로 묘사했어요. 실경보다는 관념적 성격이 강하지만 매우 세밀하고 뛰어난 솜씨를 보여줍니다.”
각 폭마다 대여섯가지 식물이 묘사되어 있는데, 가장 중심이 되는 식물은 매화(봄)와 연꽃(여름), 포도(가을), 소나무(겨울)다. 그중에서도 김 관장이 특히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매화가 수놓아진 작품이다.
“발상이 재미 있어요. 분재 아래 바퀴를 달아 이동할 수 있도록 했고, 괴석 받침대는 마치 조각보를 덧댄 느낌을 줍니다. 중국 송대의 자수와 달리 실을 꼬는 기법을 쓰는 등 우리 자수만의 독창성이 돋보입니다.”
60년대 말, 골동품 수집가들이 도자기 수집에 몰려들자,‘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모아보자.’며 시작했던 자수 작품이 벌써 3000여점에 달한다. 몇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 700여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자수의 가장 큰 매력으로 허 관장은 ‘품격’을 든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는 민화와 비슷하지만, 자수에선 민화에서 느낄 수 없는 격조가 느껴진다는 것. 그래서 민화와 달리 자수병풍은 궁중에서 주로 애용됐다고 한다.
허 관장은 자수가 예술이라기보다는 ‘모방’이라는 선입견이 가장 싫다. 단순히 정해진 밑그림을 따라 수를 놓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 실을 뽑아내는 순간부터 염색, 밑그림, 실 꼬기 등 스무단계에 달하는 각 과정 하나하나가 예술적 독창성을 요구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순수미술에서 젊은 작가들이 전통 자수를 차용한 다양한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같은 밑바탕이 있기 때문이란다.
“‘전통’이란 답습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됨으로써 그 의미가 산다.”고 말하는 허 관장의 얼굴엔 첨단으로만 치닫는 요즘 예술풍토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2006-05-1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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