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 그림한폭] 모리스의 ‘초서작품집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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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기자
수정 2006-04-04 00:00
입력 2006-04-04 00:00
예술이 낳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집이라고 답하리라. 그 다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책이라고 말하리라.‘천의 얼굴을 지닌 디자이너’로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1834∼1896)의 이 말은 생활 속 예술의 중요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모리스는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대표적 출판사로 꼽히는 한길사 김언호(61) 대표가 가장 존경하는 예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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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 한길사 대표
김언호 한길사 대표
김 대표는 모리스에 대해 “소설과 시, 회화, 디자인, 출판, 건축 등 다방면에서 탁월함을 보여주었던 토털아티스트였다.”고 설명한다. 기계문명이 결국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중세 전통과 아르누보적 요소를 생활예술로 끌어들인 예술인이라는 것.

런던 교외의 아름다운 전원마을 월샘스토에서 태어난 모리스는 특히 잎사귀, 꽃넝쿨 등에서 나오는 문양을 다양한 형태로 변형시켜 작품화하는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건축 문양과 벽지, 타일, 그림 등에 다양하게 이를 차용했지만, 출판인으로서 김 대표는 단연 모리스의 북아트에 주목한다.

“모리스는 토털아티스트이면서도 북아트에 특히 애정을 보였어요. 영국 정부가 ‘계관시인’이란 엄청난 명예를 제의했지만 ‘나는 출판인이다.’며 사양했을 정도였지요.”

모리스는 자연주의와 중세적 아름다움을 절묘히 조화시켜 책 표지와 속지 등을 장식했다. 그중 최고의 걸작으로 김 대표는 켐스콧 본이란 인쇄공방이 찍어낸 ‘초서작품집´을 든다. 이 작품집은 동시대 아센덴 공방의 ‘돈키호테’, 더우즈 공방의 ‘성서´와 더불어 세계 3대 아름다운 인쇄본으로 서적문화사에 빛나는 작품이다. 벨럼 본과 흰 돼지 통가죽 장정본으로 만든 이 책은 그가 60세에 디자인에 착수하여 작고하기 4개월 전 완성했다. 표지와 속지 등을 장식한 포도 잎사귀와 넝쿨, 화초 문양이 매우 아름답다. 중세성당의 아름다움을 모아놓은 것 같다고 해 당시 ‘작은 대성당’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유명한 화가이자 모리스의 친구였던 번 존스의 삽화도 이 책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김 대표가 내세우는 출판의 모토는 ‘시대와 호흡하는 아름다운 책’이다.1970∼80년대 ‘해방전후사의 인식’‘함석헌 전집’ 등을 통해 이땅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함께 ‘사회과학 출판시대’를 연 것이나,‘한길아트’를 설립해 굵직한 예술서적을 펴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의지의 소산이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운영하는 서점을 겸한 토털예술공간 ‘북하우스’나 출판도시에 세운 독특한 외양의 한길사 사옥 등은 그의 삶 자체가 아름다움을 향해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기계문명의 도래를 경계하고 중세적 아름다움을 새롭게 구현했던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정신이 뿌리박고 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2006-04-04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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